예화 › 훈계와 책망의 미학

이동원 목사 | 2010.07.22 14:04:0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훈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지만, 책망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짐승같이 우둔하다”(잠12:1)

아무도 훈계를 반길 사람이 없고 책망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훈계와 책망이 주어질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인격적 성숙이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훈계나 책망에 대해 비인격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인격이기를 포기한 짐승의 표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적극적으로 훈계나 책망의 가치를 변호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기자는 훈계나 책망을 자녀를 향한 부모의 애정으로 설명합니다.
자녀에게 훈계나 책망이 없다면 자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부모의 모습을 유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동일한 이유로 우리의 아바되신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의 인생의 마당에 징계를 허용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부모나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허용된 징계는 기쁘게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레스를 ‘나의 목자’라고 하신 하나님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인물이나 상황까지도
훈계와 책망의 도구로 얼마든지 쓰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훈계가 오든 그것을 겸허히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타당한 훈계를 타당하게 수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실이야 말로 참된 지식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의 근거위에 인생을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훈계나 책망이 아파도 그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지식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기도
참된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
우리로 훈계나 책망에 대해 열린 마음을 주셔서 인간답게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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