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야곱의 새해맞이

김진홍 목사(우이감리교회) | 2014.04.10 20:01:2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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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의 [해]라는 시가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꼭 정동진에 가거나 천왕봉에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해가 솟아야 할 곳은 바로 우리 마음이기 때문이다. 2013년의 달력을 떼고, 2014년의 달력을 붙인다고 해서 새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마음을 그대로 놔둔 채 새로운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얍복 시냇가에 엎드려 번민의 밤을 지새우던 야곱은 미구에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을 예감하며 떨고 있었다. 복수를 맹세하는 형인 에서의 땅에 들어서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날이 추운지 더운지 배가 고픈지 부른지 몰랐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억의 편린들 속에 간간이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왔던가.’
그 밤 야곱은 해체됐다. 무너지고 무너져 결국 ‘나’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때 마침내 그 마음의 ‘어두운 밤’은 물러갔다. 야곱이 스스로 무너진 자리에 이스라엘이 피어났다. ‘야곱’은 ‘붙잡다’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 없이 못 산다’는 뜻이다. 그때 브니엘의 아침 해가 솟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새해는 그렇게 오는 것이다.
김진홍 목사(우이감리교회)

<겨자씨/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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