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이익과 유익

최한주 목사 | 2016.12.22 23:52:5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이익과 유익


이익은 개인이든지 공동체든지 간에 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취하여 남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남의 형편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남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국가간 전쟁이나 집단 간의 싸움이나 국회나 서울역 같은 곳에서 피켓을 들고 데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집단끼리 부딪치면 서로 엄청난 손해나 피흘림이 뒤따른다.


반면에 유익은 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적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나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유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있을 때 평화가 있고 화합이 있다. 이런 개인이나 공동체가 많을수록 아름답다.

그래서 라인홀더 니버 교수는 ‘어둠의 자녀들과 빛의 자녀들’이란 책에서 이익만을 추구하여 만든 공동체는 어두움의 자녀들이 만든 공동체요 남의 유익을 위해 사랑으로 만든 공동체는 빛의 자녀들이 만든 공동체라고 했다.

 

오늘날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관계를 보면 북한이 취하는 태도는 지극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이다. 자기의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이익 앞에 다른 나라와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다. 함께 세워가는 국제 질서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없다. 아시아나기의 사고를 조사하는 미국 정부나 메스컴의 태도도 자국의 비행기 회사와 비행장을 보호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이다. 뿐 아니라 탈북 청소년들을 북한으로 도로 돌려보낸 중국의 태도도 역시 지극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세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범죄도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우리는 국제사회나 국내사회 속에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혼란과 고통을 끊임없이 보고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분노하고 경멸한다. 그러면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나아가서 이 사회 속에서 교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는 교회 밖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나만, 혹은 우리 기관이나 순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다른 성도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그 열심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한 번 쯤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빌레몬의 물질을 훔쳐 도망가다 잡혀 감옥에 갔던 전력이 있는 오네시모에 대하여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빌레몬 1:1)”라고 하였다.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오네시모가 주님을 영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에게 유익한 자의 삶을 살자.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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