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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주 목사 | 2016.11.10 23:36:3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일(勞動)


유럽 중에서도 북 유럽에 속한 나라는 일에 대하여 “천한 일과 귀한 일”로 나누지 않는다. 북유럽은 대부분이 개신교에 속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랑스나 이태리를 비롯한 남부 유럽에서는 천주교회의 영향으로 “일의 귀천”을 따진다.

여기에는 천주교회의 신음에서 종교개혁에 앞장 선 요한 칼빈이 주장한 “직업 소명설”은 자본주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노동을 거룩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칼빈뿐 아니라 같은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도 같은 사상을 가졌다. 이와 같이 노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고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오늘날 북유럽 사람들의 평등주의적 직업관을 만들어 내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노동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노동관은 사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 이전에 수도자들에게 이미 시행되어져 왔다. 그 원조를 따지자면 사막의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토니우스다. 그는 어느 날 홀로 사막에 머물며 구도자로 살던 중 한번은 더 이상 기도하기 힘든 정신적 공항에 빠졌다. 떠나온 세상에 대한 생각과 도시의 찬란함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렸다. 안토니우스는 너무 괴로워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가 문을 열고 기도실 밖으로 나갔을 때 한 천사가 앉아서 일하다가 일어나 기도하고, 다시 앉아서 일하더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천사가 “이처럼 행하라. 그러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다. 안토니우스는 “기도하며 일하라! 일하며 기도하라!”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가르침은 곧 수도사들의 황금률이 되었다.  

노동 없이 기도만 하는 것은 ‘악하고 게으른 종(마태 25:26)’이고 기도 없는 노동은 탐욕이다. ‘쉬자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도 하셨지만 ‘밤낮으로 일하라(살후 3:8)’고도 하였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행하는 것이 건강한 영성이다. 바실리우스 수도원은 밭일과 기도를 결합시켰다. 5세기 초 파코미우스 수도사들은 수공업, 목축, 양돈, 직물, 출판 분야 등 다양한 노동과 기도를 결합했다. 땀 흘려 일하는 것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결합했던 4세기 수도원의 정신은 오랜 세월 동안 서구 역사에 녹아들었고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이 계승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북유럽의 개신교 국가들이 노동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기독교적 노동관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윤리는 교회의 직분에도 영향을 끼친다. 천주교에서는 일의 “천함과 고귀함”을 나누듯이 교회직분에도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눈다. 청소와 주방의 일과 기타 땀 흘리는 일은 일당을 지불해서라도 맡기려 하고, 대신 신령한 사역에만 드리려 한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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