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늑대에서 다시 양이 되기 위한 성찰을

이주연 목사 | 2016.04.15 23:50:5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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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Eric Carle의 청양

1960년대 어린 시절
서울의 큰 한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혼자 있거나 거지들이 오거나
상의군인들이 동냥을 하려고 동네에 들어서면
무서워서 대문을 잠갔습니다.
 
그러다 아버님이 오시면 사람 사는 집에 대낮부터
왜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느냐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잘 사는 집에도 전화가 없었고
TV 냉장고 자가용도 없었습니다.
전화국이 생겨 동네에서 처음 우리 집에 전화를 놓자
나는 아들인지라 온 동네 전화 심부름을 하는
머슴이 되어야 했습니다. 

커다란 TV를 들여 놓자 프로 레슬링 하는 날엔
안방과 대청마루는 동네 극장이 되어서 사람들이 돌아간 다음
식구들은 밤 늦도록 흙먼지를 다 쓸어내고
걸레질을 하는 청소부 노릇을 했습니다. 

지금 그렇게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지금은 어린아이마저 작은 손 안에 전화도 TV도 다 들어 있고
주차장이 50미터 이상 떨어져도 손님이 오지 않는 시대
과연 그 시절로 돌아가 살 수 있을까?

왜 못 살 것처럼 생각하는 것일까요?

흔한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닐까요?
불편함을 못 참아서!
아니 편리함에 중독되어서!

그러나 지난 시대엔 문을 열어놓고 살 수 있었고
토막살인 사건도 없었고
오늘날과 같은 성폭력사건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파 도둑질을 하다 들켜도
사람을 해치는 일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그 양심과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나요!
그러나 요즘은 꿈과 순수와 정의감에 불탈 청소년들마저
유흥비와 옷과 스마트 폰을 사려고 강도로 돌변하고
친구를 착취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니 이것이 무슨 일일까요?

오늘 우리는 스스로 양에서 늑대로 바뀐 것이 아닌가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대단한 연봉을 받아 외제 승용차에 몸을 싣고
사물인터넷에 자동화된 집에 사는 것이 전부라면  
사람들은 결국 그 작은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
양의 털을 벗고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된 것인가
심각한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늑대화 되어 가는 이 세상 풍조를 멈춰 세우고
양이 되기 위한 깊은 성찰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씩 하루씩 365일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주연>
 
*오늘의 단상*
퇴근하여 가족이 다시 만날 때 웃으십시오.
행복한 가정이 찾아듭니다.
<이주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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