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1월11일 예수의 세례

정용섭 목사 | 2016.01.12 23:46:0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1월11일  예수의 세례

 

지난 설교 본문의 배경은 예수의 세례다. 예수는 당시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네 복음서가 이것을 다 전하는 걸 보면 이게 객관적인 사실인 것 같다. 예수의 세례는 뜨거운 감자다. 객관적인 사실이니 말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자칫하면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예수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례는 기본적으로 회개를 전제한다. 요한의 세례는 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회개다. 그 내용이 눅 3:7-14절에 기록되어 있다. 11절만 보면,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고 했다. 양심적인 삶을 요구하는 설교다. 이런 설교에 부응하는 종교의식이 바로 요한의 세례다.


예수는 요한의 세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세례를 다른 이들의 세례와는 구별했다. 예수의 경우에는 윤리 도덕적인 변화로서의 세례가 아니라 성령 임재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 세례다. 예수가 실제로 세례를 받을 때는 이런 현상이 눈에 보이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예수는 아주 평범한 방랑 랍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세례 이야기는 픽션이라는 말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픽션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인 사실도 아니다. 성서기자들에게 경험된 진리 사건이다. 예수가 세례 받을 때 사진 기자가 사진을 찍었다면 비둘기 같은 성령이나 하늘로부터의 소리는 담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공생애가 끝나고 부활 경험이 있는 뒤에는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경험되어야만 했다.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석된 사건으로서의 역사가 중요하다. 역사는 분절이 아니라 통합의 방식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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