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코끼리 싸움

김필곤 목사 | 2013.04.10 20:03:4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089.jpg

코끼리 싸움

 

아주 깊은 산골에 시각 장애인 모여 사는 "맹천국"이 있었다.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행복하게 서로 도우며 살았다. 어느날 읍내에 서커스 공연단이 들어 왔다. 서커스 공연단은 연일 산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선전하였다.
"세계적인 서커스 공연단이 읍내에 왔습니다. 구경 못하면 후회합니다. 일평생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불 수 없지”
“글씨 왜 이런디까지 와서 그런디어 속상하게.”
그러나 확성기 소리는 맹천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머리끝까지 채웠다.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마을 이장이 설득하였다.
“볼 수 없지만 듣기만 해도 되어. 꽁짜라고 하니게 우리 다 같이 가보자고, 밥도 꽁짜데여.”
결국 일부 사람들이 마을 이장의 안내를 받아 서커스 구경에 나섰다. 외줄 타기, 공중 곡예를 보며 사람들은 환호하였지만 맹천국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도 되지 못했다. 풍악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애당초 공연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장님 이거 뭐요. 우리 데리고 와서 망신시킬 일 있어요?”
“아니, 그거 아니어 내가 특별히 부탁하여 코끼리 만져 보게 할거여.”

약을 팔기 위해 사람들을 모집했고 모집해 온 사람에게 수당을 주었다. 이장은 자신이 수당을 받기 위해 동원하였으면서도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미안한 이장은 맹천국 사람들에게 코끼리를 만져 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난생 처음 만져 보는 코끼리이다. 코끼리를 만져본 그들은 그래도 억울하지 않았다. 공연을 끝낸 공연단은 약을 팔았다.
“이 약이 좋데여. 만병통치약이데여. 약사면 밥은 꽁짜데여.”
이장은 약을 사게 하였다. 구경을 한 후 맹천국 사람들은 마을 사랑방에 모였다. 이장의 안내를 받아 어렵게 구경을 하고 온 김 서방이 동네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등불이 필요없지만 이장은 등불이 필요했다. 가운데에 호롱불을 켜 놓았다.
“오늘 서커스 너무 좋았어, 음, 그 코끼리 대단하데, 걸어다니는 뱀인가봐 그렇게 긴 것이 달려있어, 징그럽더군.”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김서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를 쳤다.
“좋겠네, 만져보기도 하고.”
“코끼리는 뱀처럼 길게 생긴 동물이구먼. 가지 못한 자네들 평생 후회할거여.”
“나도 가서 만져 볼 걸 잘못했네.”
남편이 가자고 했지만 따라가지 않은 이서방 아내가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이 서방이 말했다.
“김 서방 말 새빨간 거짓말이어”
“뭐 이서방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잖어”
“아니어, 거짓말이어”
“그러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어.”
이 서방이 말했다.
“코끼리는 뱀같은 것이 아니라 기둥같아, 내가 분명히 만져봤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김 서방은 만져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만 듣고 쓸데없는 소리를 허는 기여.”

일부 사람들이 이 서방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 호응해 주었다. 여인들은 이 서방에게 어떻게 생겼냐고 자세하게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다. 김 서방은 화가 났다.
“이 서방, 나도 만져 보았다고 왜 그려, 내가 만져 보니 뱀처럼 징그럽게 긴 것이 있었어. 최 서방에게 물어보아. 최 서방도 함께 만져 보았으니까?”
최 서방은 김 서방의 편을 들었다.
“그래 나도 같이 만져 보았어 김 서방의 말이 마저 그려”
최 서방은 김 서방의 동서였다. 그래서 늘 같이 다녔고 김 서방이 코끼리를 만질 때 함께 똑같이 코끼리 코를 만져 보았다. 이 서방도 지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만져 보았다니까? 서 서방도 함께 만져 보았으니 서 서방에게 물어 보아.”
서 서방은 이 서방 옆집에 살았다. 그래서 늘 함께 다녔고 그 날 역시 같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져 보았다.
“그래, 내가 보증할 수 있어. 나도 같이 만져 보았는데 코끼리는 분명 기둥처럼 생긴 동물이야.”
“우리도 가 볼걸 그랬어. 우리가 직접 만져 보아야 알제”
이 말을 듣고 있던 이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내마 뭐라고 했어요. 평생 후회한다고 했지 않아요. 내일 우리 모두 같이 갑시다.”
이장은 속셈이 있었다. “뭐 가요. 내 말이 맞다니까!”
김 서방이 소리쳤다.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은 이 서방에 대하여 아내가 말했다.
“김 서방 말이 맞네.”
이 서방은 약이 올랐다.
“저것은 보지도 못했으면서...내 말이 맞아.”

코끼리 논쟁은 두 편으로 갈라졌다. 서로 편을 들고, 우기며 욕을 했다. 김 서방 편을 드는 사람들은 김서방의 일가 친척과 김서방 집 근처에 사는 사람들, 김 서방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김 서방과 같은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이 서방 편을 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는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 도시에 나가 코끼리를 본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코끼리에 대하여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서로 편들기에 바빴다. 말싸움은 금방 몸싸움으로 번졌다. 마을 이장을 위한 호롱불이 넘여졌다. 순식간에 불이 번졌다. 엉겨붙은 사람들은 그 방을 빠져 나오지 못하였다. 불길은 번져 이 서방의 집도, 김 서방의 집도 태우며 서커스 공연장까지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 콩트집 하늘바구니/2010.5.30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