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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맷돌 | 2022.10.24 21:25:0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아침편지3186]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암 전조 증상’ 아홉 번째는 ‘지속적인 열(熱)’입니다. 열은 일반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우리 몸이 감염과 싸우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답니다. 때론, 일부 약의 부작용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뚜렷한 원인이 없는 열’은 백혈병이나 림프종과 같은 혈액암의 징후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낯선 시골집 특유의 냄새가 왈칵 안겨들었지만, 이제는 건넌방도 이전의 방안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방 한 가운데 단정하게 개켜놓은 자줏빛 한복 한 벌이었습니다. ‘16년 전 결혼식장에서, 시어머님이 입었던 한복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내려다보던 저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왜냐하면, 한복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편지쓰기를 좋아했던 제가, 결혼식 전에 시어머니께 썼던 ‘첫 번째 편지’였습니다. 자식이라고는, 아들 형제밖에 없는 시어머니이신지라, 저는 그 편지에서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습니다!”하고 다짐을 했던 터였습니다. 그 약속이 마음에 걸려, 저는 마치 살아계시는 시어머니 앞에 앉는 것처럼, 한복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유품으로 되돌아온 그 편지를 섣불리 꺼내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편지 속의 그 약속이 더 가슴에 사무쳐 왔습니다.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 장례식 때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죽하면, 조문객들이 저를 가리키며 ‘고인의 딸이냐?’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시어머님은, 지병으로 3개월간 병원생활을 하시다가,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날짜를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퇴원하기로 한 바로 그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온가족의 기쁨을 순식간에 슬픔으로 바꿔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죽음이란 죽은 자의 몫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 주위에서는 이렇게 가까운 분의 죽음이 없었던 터라, 그 말에 쉽게 공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여의고 난 다음, 제가 느껴야 하는 상실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시어머니께 드린 첫 번째 편지에서 약속했던 ‘딸 같은 며느리가 되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출처; 샘터, 이여주 / 경기 강화)

 

뉴스를 들어서 아시겠지만, 지난 1일 밤 인도네시아의 한 경기장에서는, 축구팬들의 난동으로 인하여 무려 125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 중에는, 32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답니다. 숨진 125명은, 그야말로 날벼락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예고된 죽음도 있으나,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참사나 글쓴이의 시어머님처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죽음’도 많습니다. 글쓴이는,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죽음’에 관한 글을 보면서도 ‘공감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부모님과 친척, 그리고 교우들의 ‘영원한 이별’을 수시로 경험하면서도, 죽음을 절실하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죽마고우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이젠 나의 죽음도 그리 멀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인생이 언제 끝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친구의 소천을 계기로 해서 ‘죽음’에 관한 명제(命題)를 ‘좀 더 깊이, 그리고 좀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물맷돌)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짐승처럼 죽음을 맞이하리라.(시49:20,현대어)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일러주시는 말씀을 잘 들으라. 이기는 자(신앙의 승리자)는 결코 두 번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계2:11,현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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