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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맷돌 | 2022.09.04 20:21:3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아침편지3135] 2022년 8월 6일 토요일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면, 충분히 슬퍼해야 합니다.

 

샬롬! 지난밤 눈 좀 붙이셨는지요? 8월의 첫 주말아침입니다. 오늘도 꽤나 더울 텐데, 삼복더위 잘 이겨내시고, 여름 나름의 그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물은 감정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걸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하버드대 동물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바다수달 등 일부 동물들도 ‘감정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심리적인 에너지를 상대에게 갖다 바치는 활동’입니다. 이별은 그 ‘에너지를 회수하는 일’인 고로, 당연히 추스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별할 때, 사람은 심리적으로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애도 반응’을 단계별로 겪습니다. 아직 헤어진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단계에서 ‘분노’를 거쳐 ‘우울’, 그리고 ‘수용’에 이르는, 일련의 ‘감정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실연(失戀)을 견디지 못해서 찾아온 사람에게, 저는 이 반응을 설명하고, 이 과정 가운데서 혼자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도와줍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별소식을 알리면, 애도기간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얻은 아픔은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과연 ‘사람으로 얻은 아픔은 정말 사람으로 치유해야 할까요?’ 이별을 감당하기에도 벅찬데, 멋진 남자가 눈앞에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별 직후에 새로운 이성(異性)으로 마음을 치유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이성 탐색 대신에 미련을 없애는 ‘마지막 노력’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소개팅’이 아니라 ‘이별수용’입니다.

 

지영 씨는 10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한 30대 후반의 전문직 여성입니다. 그녀는 극도의 허무함과 무력감 때문에 우리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그가 나를 버릴 수 있지?” 지영 씨는 이별 후 애도반응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왜 그를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는 그녀에게 제가 해준 해답은 ‘충분히 더 슬퍼하기’였습니다. 맘껏 더 아파해야 합니다. ‘내가 아프다면, 그를 충분히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오히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면, 충분히 슬퍼해야 합니다.(출처;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정신과전문의 유은정 박사)

 

요즘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흐름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아닌 가 쉽습니다. 물론, 유 박사가 예로 든 지영 씨처럼, ‘진지한 만남’도 드물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유 박사는 지영 씨에게 ‘새로운 만남’을 갖기 전에 ‘좀 더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만남’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어쩌면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좀 더 충분한 ‘준비와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신앙생활을 할 때에 맞이하는 여러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물맷돌)

 

[사울과 요나단은, 살아 있을 때에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떨어지지 않았구나!(삼하1:23,표준새번역) 주께서 이 몸을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님만을 애타게 그리는 이 몸을 버리지 않으시리라. 주께서 생명의 길 보여주시리니, 주님의 얼굴은 한없는 나의 기쁨, 주님은 한없는 나의 즐거움이십니다.(행2:27-28,현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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