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쉰일곱 살의 동재아저씨

물맷돌 | 2022.06.17 19:29:3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아침편지3075] 2022년 5월 28일 토요일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은 할 수 없어요!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5월의 마지막 주말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유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최근 전직 장관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일회용 고무장갑’이 화제였답니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분이 “남자들이 퇴직하면 설거지를 많이 하는데, ‘일반 고무장갑보다 손에 딱 달라붙는 일회용 고무장갑이 편하다’고 누가 얘기하니까, 다들 큰 관심을 보였다”면서 “밖에서나 장관이지, 퇴직 후엔 아내한테 꼼짝 못하는 남편”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쉰일곱 살의 동재아저씨는 몇 년 전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두 아들의 아버지였습니다. 그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이 닥쳐온 것은 3년 전, 오른쪽 아래턱에 밤톨만 한 암이 생긴 이후입니다. 그는 암을 제거하고 허벅지 살을 떼어서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암은 없어졌지만, 턱에 허벅지 살을 붙이고 나니, 혹부리 영감의 얼굴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흉측해진 얼굴 때문에 그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수술하지 말 것 그랬다’고 후회도 했습니다. 이혼한 아내가 한 집에 살면서 식사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었지만, 한순간 뒤바뀐 삶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1년 후, 암은 왼쪽 아래턱에서 재발했습니다. 이미 한 번의 수술 후 변해버린 얼굴 때문에 크게 충격을 받았던 동재아저씨는, 수술도 하지 않고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상황은 더욱 참혹해졌습니다. 방치된 암세포가 아래턱을 녹여버리자, 혀와 치아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제 아저씨는 아내를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만 머물면서 냄새나는 분비물을 혼자 처리했습니다. 통증이 심해지고 죽도 삼킬 수 없게 되자, 동재아저씨는 비로소 호스피스병동에까지 오게 되어 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매일 암환자를 보는 저에게도 동재아저씨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처참했습니다. 반이 없어진 얼굴에 큼직한 혀가 툭 튀어나와 있고, 덜렁거리는 치아 몇 개가 보였습니다. 그의 얼굴은 해부가 끝난 ‘카데바(해부용 시체)’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재아저씨의 정신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맑았습니다.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그는, 그러나 저의 다른 환자들처럼 ‘생명의 에너지’가 다하는 순간까지 살았습니다.

 

“두 아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은 할 수 없어요! 애들한테 상처가 될 테니까…….” (출처;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아려준 것들, 김여환 / 호스피스 병동 의사)

 

만일 제가 동재아저씨처럼 된다면, 저자신은 도저히 삶을 연장할 수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동재아저씨가 자식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자살을 감행치 못했던 것처럼, 저 또한 그런 마음 때문에 자살을 감행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고통으로 인한 죽음의 물결이 덮쳐 와도, 마지막 순간까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식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맷돌)

 

[생명의 샘물이신 주님이여, 주님의 환한 그 빛 속에서 우리가 환한 그 빛으로 살아가리다.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끊임없는 사랑으로 돌보소서. 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을 주의 의로움으로 감싸소서.(시36:9-10,현대어) 나는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요일5:13,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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