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우리는 더욱더 ‘버림받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물맷돌 | 2021.10.31 07:04:5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우리는 더욱더 ‘버림받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 건강하고도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전문가들은 ‘식전에 과일을 먹는 것이 과식을 막아준다’고 추천합니다. 식후에 후식으로 과일을 먹게 될 경우, 혈당을 급격히 높여서 성인병 위험까지 커지게 한답니다. 식전에 먹으면 좋은 과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키위, 사과, 그릭요거트, 샐러드, 토마토.

 

그 당시, 재활원 출신으로 휠체어를 타고 연주하는 ‘베데스다’라는 연주단 형들이 있었습니다. 첼로와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이루어진 앙상블이었는데, 꽤 유명했습니다. 형들은 가끔씩 와서 원생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도 바이올린을 켜고 싶었지만 악기를 장만할 돈이 없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배우던 형들 중 한 사람이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 형은 얼마 뒤에 죽었습니다.

재활원의 생활은 한마디로 슬픈 경험이었습니다. 그곳은 생사고락의 작은 축소판이었습니다. 열 살에서 서른 살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장애를 가진 이들은, 세상의 그늘에서 소리 없이 신음하는 ‘힘없는 영혼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부모마저 감당할 수 없어서 그곳에 버리고 간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때때로, 교회나 구호단체에서 빵과 우유를 사들고 와서 우리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특히 성탄절 전후에는, 여러 교회 팀들이 와서 노래나 연극 등을 보여주고 갔습니다. 한 시간짜리 공연을 보고 나면, 우리는 더욱더 버림받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서 위문품이 왔으니, 먹을 것을 타가라’고 하면, 아이들은 1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얻기 위하여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일회성 방문은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위로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만 가능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종교의 이름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것이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면 ‘값싼 동정’과 ‘소외의 심화’로 이어집니다.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출처; 기쁨공식, 고등과학원 교수 김인강)

 

아시다시피, 공산주의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나눔’을 실시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나눔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적이고 강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만을 나누는 게 아니라, ‘사랑이 포함된 삶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기독교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함께 나눈다.’는 생각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물맷돌)

 

[배고픈 사람에게는 네 음식을 나누어주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면, 네 어둠이 밝아져 네게서 사방으로 대낮같이 밝은 빛이 퍼져 나갈 것이다.(사58:10,현대어) 아직도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눅18:22,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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