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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맷돌 | 2021.09.03 23:36:4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아침편지2841] 2021년 8월 28일 토요일

 

저의 아내는 우리 집안의 난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샬롬! 8월의 네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고려대 이헌정 정신의학과교수는 우울증과 조울증 관련연구를 7년째 하고 있는데,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햇볕을 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또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등, 수면 패턴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지속되면 생체리듬이 흐트러지게 되고, 이로 인하여 우울증과 조증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유학하는 동안, 꽤 힘들었습니다. 단돈 2백 달러를 들고 유학길에 오른 신혼부부에게 유학생활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제일 고마웠을 때는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백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으셨는데, 그때 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자도 만료되고 장학금은 끊기고 일거리도 없는 백수 가장에게는 어린 아들이 둘이나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비자 문제 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숨을 쉬면서 힘들어하는 저에게, 아내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렇게 그냥 두시지는 않을 거예요. 분명히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봐요.”하면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얼마나 고맙던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극적으로 인디애나 주(州) 개리 시(市)의 교육공무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1977년 새해가 밝아오는 아침에 정든 피츠버그를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아내는 저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주는, 우리 집안의 난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출처;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우리나라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 강영우)

 

제가 아내 자랑을 워낙 많이 하는 고로 팔불출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만, 강영우 박사도 살아계셨다면 ‘팔불출 클럽’회원이 되고도 남을 듯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살다가 어렵고 힘들 때 서로 도와주면서 살라’고 우리에게 가정 제도를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러한데도,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적잖이 사치스러운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아내 덕분에, 남편은 마을회관에서 마을 장로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 앉아 마을 일을 볼 만큼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아이들도 ‘엄마 최고!’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남편도 아내를 아낌없이 칭찬하지.(잠31:23,28현대어)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고전7:3 현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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