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바라보는 공간에

물맷돌 | 2021.07.02 23:50:2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아침편지2792] 2021년 7월 2일 금요일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바라보는 공간에 죄(罪)와 벌(罰)은 없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무더위 잘 이기시면서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지난해(2020년) GDP가 세계 9위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러시아’는 우리나라 위아래에서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충북 괴산군에는 외국인이 27%를 차지한답니다. 충북 영동군은 25%이구요.

 

외부병원에서 한 수용자를 계호(戒護;범죄자를 지키는 일)할 때였습니다. 70에 가까운 그는 발목에 수갑을 찬 채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소변을 치우거나, 밤새 그를 감시하며 지키는 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부모님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데 죄수의 병 수발을 하려니,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용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때론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가 종일 밥과 물을 거부한 날, 저는 큰일이라도 날까싶어서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하면서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거부하더니, 제가 귀찮았는지, 출입문을 향하여 휙 돌아 누었습니다. 한동안 그런 자세로 가만있더니,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습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출입문 창 너머로 연로한 할머니가 병실을 들여다보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니, 키가 작고 등이 활처럼 굽은, 손대면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질 것 같은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힘없는 종아리로 까치발을 들어 잠시 병실을 들여다보다가 힘이 풀리면 발바닥을 바닥에 붙였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냥 다리가 아파서 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문틈으로 보이는 수용자에게 머물렀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할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챘지만, 서로 접촉할 수 없는 것이 규정이었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병실에 들어가 아들의 손을 잡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쫓아내지도 못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냥 우두커니 서서, 힘겹게 서 있는 할머니를 부축할 뿐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바라보는 공간에 죄와 벌은 없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이민우)

 

이 할머니께 그 아들은 ‘죄를 지은 범죄자’가 아니라 그냥 ‘그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찾지 않거나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집을 나간 ‘둘째아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둘째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멀리하거나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할머니처럼 발꿈치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며 ‘이리 오라’고 손짓만 할뿐입니다.(물맷돌)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 부끄럽게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못되고 비뚤어진 백성이다.(신32:5, 쉬운성경) 누구든지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요1:11,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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