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을이 바라보는 풍경4

이주연 목사 | 2012.07.09 23:58:0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생각지 못한 형제가 길에 앉아 날 부른다.

 “목사님도 이리 오시지요. 고맙습니다! 오늘은 제가 한 잔……”

혀 꼬부라진 소리다. 한 동안 보이지 않던 M이다.

가판대 곁 가로등 아래에서 신문지 깔고 술판을 벌이고 있다.

 

그는 술에 늘 절어 산다.

술 취하지 않았다면 나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술이 들어가야만 사람을 만나고 이곳 저곳에서 손도 내민다.

 

그들에게 허용된 이 도시에서의 공간이란

저 신문지를 깔고 둘러 앉을 저 곳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문지 깐 저 자리가 웬수다.

이 거리에선 저 술판을 이길 장사가 없다.

 

그들은 밑 빠진 독이다.

마음에 밑이 빠졌다.

실패감과 공허, 외로움과 슬픔이 밑을 빠지게 한다.

거리로 나선 인생 1년 안에 3할은 저 술판에서 내미는 손길에 걸려든다.

그 손길은 인심 좋은 듯하지만,

그 위로는 술독으로 끌어들이는 끈끈이주걱이다.

 

이 거리에서 술중독에 걸리면 정말 끝장이다.

나는 아직 벗어난 사람을 못 봤다.

벗어나려고 기를 쓰는 이도 있지만

결국 고통과 혼란 속에 머문다. 

 

밑 빠진 마음에 마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먹으면 또 먹게 되고,

몸 상하고, 힘 빠지고,

마침내 일할 의욕마저 증발돼버리고 만다.

 

자신들도 가장 괴로워하면서도

어찌 할 수 없는 길이라고 토로한다.

그래서 다시 서겠다고 이를 악문 사람들은

한 잔 하자고 붙잡는 손길을 피해가거나 두들겨 패기도 한다.

이 인생 나를 더 이상 망가뜨리지 말라!”는 울분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원망과 분노와 자조 섞인 주먹질이다.

 

지금은 떠나가버린 L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를 희망근로 하도록 연결시켜 주었을 때,

어린아이처럼 감격해 하며 좋아했다.

 

그는 S구청 주차관리를 맡게 되었는데,

너무나 좋아 새벽같이 가서

타이어 자국만 나면 종일 닦고 또 닦았다.

그 대가는 왕따였다.

뭐가 좋아서 너는 그렇게 닦고 또 닦냐!

잘난 채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종일 닦고 또 닦았다.

한 달이 가까이 오자 그는 성탄 주일 예배 후 내 방엘 찾아왔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번 주 금요일에 월급 탑니다.

20년 만에 받는 월급입니다.”

 

그러나 그 월급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부터 예산이 줄었다고 희망근로가 끊어진 것이다.

그 일도 힘 있는 자들이나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는 그후 주일 예배에서도 볼 수 없더니

몇 달 만에 나타났다.

그를 보는 순간

아 이럴 수가! 어디서 이렇게…..”

그의 손을 잡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

얼굴은 새까맣게 변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몸과 옷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얼굴을 못 들고

목사님 죄송해요!”

그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늘 내가 거리로 두 형제를 찾아나선 것은

이런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고 벗어나다가 다시 한번 떨어지면

알코올 중독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 다 깨진 인생

마지막 남은 것마저 조각 날 수가 있다.

 

M은 내 소매를 끌며 술 잔을 가져온다.

내가 넋을 놓고 바라보니 허리를 굽신거리며

압니다. 압니다. 목사님…..”

술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는 술만 깨면 수줍고 착한 눈빛으로 친근감을 드러내는 분이다.

이들은 알고 보면 악하기 보단 참으로 약하기만 하다.

그들은 때론 거친 소리도 하고 냄새도 풍긴다.

그래야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수법이다. 

 

하지만 지내고 보면 모질지 못하고 착한 구석이 더 많다.

그래서 이렇게 무서운 세상경쟁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져 나와

거리에 머물게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배우지 못하여 이 세상 살기에

무능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거리도 한산해지고 말았다.

집채 만한 차가 무섭게 곁으로 달려간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이 따로 있다는 것이 뭘까?

그 집과 이 거리의 차이는 뭘까?

사람마다 기를 쓰며 갖겠다고 인생을 걸고

돈 모아 사려고 하는 그 집은 뭘까?

 

그것을 위하여 인생을 걸만한 것일까?

혹 등기부 등본에 제 이름 올라가면 인생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얼마나 머물 게 되는 것인가.

인생은 어차피 잠시 잠깐 머무는 무상 전세인걸.

우리는 무슨 중독이 이토록 심하게 걸린 것일까?

 

떠나간 두 형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저 거리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주여, 함께하소서! <>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삶을 이루려면
주장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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