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사랑밭 새벽편지] 딸기 한 알

권태일 | 2005.09.09 18:51: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시어머니가 노인성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레 겁을 먹어서인지
생각보다 그리 힘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 총기 좋으셨고
언제나 당당하셨던 모습을 생각하면
요즘 변해버린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이
참 힘이 듭니다.

병원에서 받아오는 약을 드시면서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식사를 통 못하시기에
약을 끊어봤습니다.

그야말로 사시는 동안 밥이라도 맛있게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결혼할 때 밥 조금 주는 며느리 들어올까 봐
겁이 나셨다는 어머니신데,
공기 밥 한 그릇 드시기도 힘들어하시는 게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얼마 전 시누님이 조기를 한 상자 사오셨습니다.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자주 구워드리는데
며칠 전부터 조기 좀 구워라 하시는 겁니다.

금세 구워 드린 걸 드시고도 잊으시고….
딸이 사온 조기가 많았는데
며느리가 누구 다 줬나 보다고
집에 오신 손님에게 그러시더랍니다.

정말로 드신 게 기억이 나지 않느냐는
제 말에 언제 구워줬냐고
말간 얼굴로 반문하시는데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딸기를 씻었습니다.

상한 것을 골라 베어내고 씻은 후
어머니와 남편과 아이들에게
딸기를 가져다주고
저는 설거지를 계속했습니다.

제 딸이 딸기를 가져와서 내 입에 넣어주는데도
어머니는 저더러 빨리 와서 딸기 먹으라고
성화를 하셨습니다.

딸이 빈 접시를 가져오면서
“엄마, 할머니가 엄마 것이라고 남기셨네.”

제일 크고 잘 익은 딸기 한 알이
접시에 남아 있었습니다.

- 유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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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죠.
자식들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그 어떤 로맨스보다 달콤하고 위대합니다.

- 어머님, 당신의 사랑에 목이 메여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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