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좀나방과 꽃나방

이진우 | 2005.02.28 23:14:1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옷장 속에 좀이 있었다. 좀은 외투와 순면 속옷을 갉아먹었다. 배가 부르면 비단 틈에서 잠을 잤고, 눈이 떠지면 입맛 당기는 옷들을 찾아 다녔다. 좀은 어느 틈에 나이가 들어 나방이 되었다. 어느 날 옷장 문이 열린 틈을 타서 좀나방은 바깥으로 나왔다. 좀나방 앞에 환한 유리창이 보였다. 안쪽에서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꽃나방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좀나방은 마음이 통해서 말을 걸었다. “얘, 나하고 살지 않을래?” 그러자 꽃나방은 “가서 수의나 파먹지 그래?” 하고 핀잔을 주었다. “나한테 시집을 와 봐. 밍크 코트 맛도 보여 줄 수 있어.” 좀나방은 으스대며 말했다. 그러나 꽃나방은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꽃과 저녁놀만으로 충분해.” “얘, 이 집 주인의 연미복을 뜯어먹는 맛을 알기나 해?” “한심스럽다 얘. 그걸 안 먹는다고 죽니? 너는 먹기 위해서 사니? 나는 파란 하늘과 감미로운 바람 속을 날아서 작은 풀꽃들을 사랑하는 기쁨으로 산다구.” 좀나방은 투덜거리며 돌아섰다. “너같이 시시한 것들은 내 배필이 될 수가 없어. 가서 쌀나방한테나 장가들어야 겠다.”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고 사는 불쌍한 녀석아, 계속 먹다가 끝나거라.” 꽃나방은 이 말을 한 후 날아가 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좀나방처럼 살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도 그러했다. 의의 새 옷을 입은 사람들도 때로는 좀나방을 흉내내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 그래서 사는 방식도, 입맛도, 취미도 달라야 할 사람들이다. 파먹는 일은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아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살지는 않는가 /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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