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축복하러 집에 가라

전병욱 목사 | 2010.09.20 12:11:3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축복하러 집에 가라 (1.25.07)

  현대인은 바쁘다. 직장에서 지친 모습, 기진맥진의 모습으로 퇴근할 때가 많다. 성도의 퇴근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윗은 “축복하러 집에 갔다”고 말한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삼하6:20) 저녁 때가 되면, 피곤하다.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배가 고파서 빨리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싶은 생각도 있다. 빨리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다윗은 축복하기 위해서 집으로 간다고 말한다. 전혀 새로운 태도의 퇴근에 대한 접근이다.
  예루살렘에 언약궤가 들어온다. 기쁨이 넘쳐서 다윗은 춤을 춘다. 그리고 왕으로서 백성들을 하나하나 축복한다. 축복하는 것이 그의 일이자 사명이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삼하 6:18)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이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왜? 이제는 가족을 축복하기 위해서 집으로 가는 것이다. 직장 생활은 직장 축복의 사역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가족 축복의 사역이다. 교회로 가는 것은 교회 축복의 사역이다.
  어떤 가장은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퇴근 후에도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지치고 힘들어서 움직일 힘도 없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달라는 가장의 기도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가장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놀아주고, 축복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놀아줄 수 있다는 것은 어울린다는 뜻이다. 어울림은 자기를 내어줄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어울림은 축복하는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쉴만한 물가”를 “놀만한 물가”로 번역하는 것을 보았다. 누가 쉴만한 물가의 인격을 가진 사람인가? 놀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 가면을 버리고, 상대를 영접하는 사람이 놀아주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사람들은 쉼을 누린다. 축복하는 자는 쉴만한 물가이다. 축복하는 자는 놀만한 물가이다.
  어떤 것을 움켜 쥐려고만 하지 말고, 축복하는 자가 되라. 가장의 특권은 가족을 축복하는 것이다. 아내를 축복하라. 자녀들을 축복하라. 이삭이 아들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모아놓고, 하나 하나 축복해 준다. 야곱은 심지어 바로 왕을 축복한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47:10) 곡식을 얻어 먹으러 간사람이 주는 사람을 축복한다. 야곱은 자신이 축복하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삭의 축복, 야곱의 축복이 나에게도 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축복할 힘이 없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지친 사람이라고 해도 축복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가족을 축복하라. 세상을 축복하라. 그것이 성도의 존재 이유이다.
출처/ 삼일교회 청년부 주보 yes31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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