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일천번에 대한 오해

빛소리 | 2010.01.30 11:51:0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서 신학적으로도 논란은 있습니다.
단번에 일천마리를 드렸느냐 매일 한마리씩 천일을 드렸느냐? 하는 문제인데

영어번역으로 단번에 즉 한번에 일천마리를 드렸다는 것에 동조하는 주장을 가지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맞다라고 단정 지을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공동번역에도 보면 애매하게 번역되어 나옵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 번제물을 천마리나 바친적이 있다.......그렇게 나옵니다.

천마리나 바친적이 있다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천마리를 한꺼번에 바친적이 있냐? 아니면 천마리를 매일 같이 바쳤느냐는 보기 나름이요.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오히려 후자쪽이 훨씬 더 정확성에 가깝습니다.
원문에도 보면-영문보다 원문이 더 정확하겠죠? 영문이 완벽한 번역이라고 볼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한꺼번에 바쳤다는 말보다 오히려 후자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 이유를 몇가지 근거해 드리겠습니다.

1)원문에보면 드렸다라는 말의 아라 : hl;[;-죄송합니다 히브리어가 깨졌네요-라는 말로 사용되어 있는데 이 말 뜻은 올라가다...기어오르다 등등 많은 뜻이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드리기 위해 매일 올라갔다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2)혹시 소 한마리를 태워 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사람의 시신을 태울때 현대 화장문화로 보면 거의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봅니다. 소는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소를 잡을때는 예식대로 한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걸 가만하면 한마리를 번제로 드렸다니까 잡아서 태운다고 가정할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제사장이 다 동원된다 하더라도 하루에 천마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그 당시 솔로몬 시대의 성전으로 과연 천마리를 잡을 수 있고 태울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되었을까? 절대 불가능한 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현대식 시설로 구비되어 있다고 해도 천마리를 한꺼번에 잡아서 태울만한 시설은 그 당시에 불가능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하루에 한마리씩 천일동안 드렸다는게 더 설득력을 가집니다. 목사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이런 근거로 후자쪽이 더 성경에 뜻과 솔로몬의 뜻에 합당하기에 그렇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천마리를 드리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천일동안 그렇게 매일 드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루디아님의 의견에 불교식으로 혹은 샤머니즘 식으로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이 우리 신앙에 맞지 않다고 하셨는데 일부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관점에서는 샤머니즘이나 타종교나 우리 기독교가 가지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복적이라고 말하는 신앙 반드시 나쁜것 만은 아니지요. 왜냐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복을 구하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중심, 우리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죠. 우리는 언제든지 샤머니즘 신앙으로 빠질 수도 있고, 우상신앙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 있습니다. 우리가 무당처럼 타 종교처럼 우상은 섬기지 않지만 우리 신앙이 자칫 그런 종교처럼 빠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건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이 한꺼번에 일천마리를 드렸느냐? 아니면 매일 천일동안 드렸느냐?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본질은 솔로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 아닐까요?
물론,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나쁘냐? 아닙니다.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천번제에 관한 주장은 어떤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렸다라는 흑백논리에 적용시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는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그것도 목사가 모르냐? 그런 엉터리 해석을 하고 설교하는 목사가 있냐?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깁니다.
저도 일천번제 매일같이 드렸다고 가르치는 목사로서 제가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일천번제에 대한 오해가 있어 한번쯤 다른 의견도 있다라는 것을 제시하고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주안에서 평화가.......

댓글 [9]

댓글 쓰기

목록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