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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 목사 | 2011.04.23 13:02:0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표현된 감사

 

가끔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때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용돈같지도 않은 용돈일 것입니다. 아이들을 불러 똑같이 1000원씩을 줍니다. 1000원으로 과자 몇 봉지 사면 끝이 날 것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참 용돈을 받는 날이면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용돈을 준지 며칠이 지난 후 6학년에 다니는 큰딸이 "우리 아버지도 돈 버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아빠도 돈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아빠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돈버는 직업을 포기했다"고 타일러 주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용돈을 많이 받는 아이들과 이제 비교할 만한 눈이 뜨인 것 같아 조금은 책임감과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달 전쯤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똑같이 1,000원씩을 용돈으로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감사합니다."라고 기쁘게 용돈을 받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 가보니 책상 위에 편지 한 통과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편지를 펴 읽어보니 작은 딸아이의 편지였습니다.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 저희를 가르쳐 주시고 길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빠 말씀 잘 들을께요.... 아빠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해요..."
아이는 아빠의 생일을 잊지 않고 용돈 1,000원 준 것으로 1,000원짜리 볼펜을 생일 선물로 사 온 것이었습니다. 아마 두 아이도 아빠의 생일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니면 철이 없어 그런 마음 조차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일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형수를 건져 내어 해방시켜 주었던 명 변호사 Samuel Leibowits는 회고하기를, "내가 평생에 전기 의자에 앉아야 할 사형수를 78명이나 구원해 주었는데, 자기에게 찾아와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직업을 알선하는 Art King씨도 술회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2500명에게 직업을 찾아 주었는데, 오직 열명 만이 감사장을 보내 왔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필요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받고 주님께 감사한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동네에 들어가시는데 열명의 문둥이가 자신들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는 제사장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는가를 판별하였는데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문둥병에 걸린다는 것은 당시는 불치의 병으로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씨는 문둥이의 슬픔을 그의 시 '손가락 한 마디'에서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 겠다.

문둥병은 나균에 의해 신경조직과 연골이 썩는 병입니다. 신경조직이 썩기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져 흉측한 모습이 됩니다. 고통도 없이 코가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갑니다. 이 병은 전염병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를 시켜야 합니다. 평생을 이 고통속에 살다가 병이 악화되면 눈이 떨어져 나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죽어야합니다. 정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손가락질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친구들도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꿈도 야망도 없습니다. 비바람치는 여름이나 눈보라 치는 겨울이나 땅 속 움막같은 곳에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 와서 감사를 표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반문하기를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감사는 마음의 울타리에 가두어 놓는 것보다 표현될 때 풍요롭게 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소년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려서 성장해온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며 물질보다는 인간적 감화에 대하여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지 못했던 탓도 있으나 어릴 때부터 감사를 충분히 표현하는 인간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도 한 이유였다. 나를 도와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내가 직접 감사를 하려해도 그들 대부분이 세상 떠난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러므로 감사란 잠시도 주저하거나 보류해 둘 것이 아니며 그 때 그 때 표현하는 것이 좋다."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둘째 딸 아이를 학교 가기 전에 불렀습니다. "그래 생일 선물 고마웠다" 말을 전하고 2,000원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너무 기뻐하며 "고맙습니다."를 몇 차례 하였습니다.

표현된 감사/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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