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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국민일보 기자 | 2013.08.25 07:43:1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삶의 응원가

살며 사랑하며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위기를 만날 때 인생의 수평선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인생의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함 때문이다.
얼마전 예기치 않은 인생의 기후변화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찾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 전체가 내일의 불안감에 허우적거리고 검찰 수사를 받던 기업인과 정치인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한강 투신이 잇따를 때였다.
국립암센터에 입원해 있는 한 친지를 만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도착한 한 환우는 6시간 동안 잠을 자면 안된다는 의료진의 처방을 따라야 했다. 그는 마취에서 깨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고통과 몽롱함으로 깊은 터널 같은 수면 속으로 자꾸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1주일 전 같은 병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한 한 환우가 침상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봐요,이렇게 크게 숨을 쉬어봐요. 하나,둘,셋…그래요,잘했어요.” 그러자 다른 환우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지금이 가장 힘들 때예요. 이 고비만 넘기면 돼요.” “힘을 내요. 별거 아니예요. 나를 보고 용기를 내봐요.”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격려와 용기의 말은 넘어졌던 릴레이 선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삶의 응원가’였다. 수술한 환우는 힘을 얻어 어려운 고비를 가뿐하게 넘겼다.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 왜냐하면 같은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내 심정이 그의 심정과 같고 그의 심정이 내 심정과 같기 때문에 연민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이웃들에게 우린 그 누군가가 돼야 한다. “잘했어” “너도 할 수 있어” “그래 그래 괜찮아”라는 언어는 ‘삶의 응원가’이며 영혼에 힘을 실어주는 ‘천국의 언어’이다.
특히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 말 한 마디가 단단한 생명의 동앗줄이 될 수 있다. 인생의 수평선 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에겐 이런 생명의 동앗줄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학업 스트레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청소년,파산과 실직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가장,상실감에 외로움에 떠는 사람들….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생명을 선물한다.
상처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방법은 물질적 보상보다 칭찬과 긍정적인 격려가 아닐까? 실제로 칭찬과 격려를 통해 신바람이 나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발생하고 생산성이 올라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거짓없이 진실한 마음로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칭찬할 일이 보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을 더욱 격려하고 칭찬하자. 어쩌면 지금 우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인생에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정말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곧 찾아올 것이다”는 누군가의 말을 기억하며 “여호와 이레”를 외쳐 본다.
이지현 국민 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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