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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 목사 | 2012.11.02 15:50:3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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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짧은 인생

 

미용실에 갔다.
“민아 엄마 오셨어요.”
미용사는 민아 엄마와 친한 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늘은 바쁘지 않으셔요. 한가한 것 같네요.”
“요즈음 불경기라 미용하실 손님도 없어요.”
“내 그런 줄 알고 친구와 같이 왔어요. 잘 해 주세요. 단골이 될 거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웃음을 가득 담고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내 딸이어요. 앞으로 잘 해주세요.”
“어머, 예쁘네요.”
딸을 예쁘다고 칭찬하면서 표정이 이상했다.
“주희야, 너 여기 왠 일이니?”
미용사는 딸을 보고 ‘주희’라고 불렀다.
“아니, 무슨 소리예요. 이 아이는 주희가 아니라 내 딸 보아예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본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머리를 손질하고 집에 오자 민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김 집사, 미용사가 김 집사를 오해하고 있어. 납치범으로.”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 친구 딸이 있는데 이름이 주희래, 보아를 주희줄 알았데, 그래서 김 집사가 납치한 줄 알고 나에게 꼬치꼬치 물어보았어.”
“뭐 별 사람도 다있네, 아니 보아도 쌍둥이인데 보아와 또 똑같은 애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의심이 생겼다.
가끔 보아와 보희가 쌍둥이인데 왜 이렇게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말을 듣고 보니 더욱 의심이 생겼다.
‘병원에서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혹시 우리 아이가 바뀌었을까?’

저녁에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 애들이 지금 몇 살인데.”
“여보, 그렇지만 한 번 내가 만나 보아야 하겠어요.”
남편은 반대했지만 만나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미용실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미용사에게 친구와 친구 딸을 초청해 달라고 했다. 머리 손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보기 위해서이다. 아이와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거울에 여자 아이가 비치었다. 미용사 말대로 옷과 머리 스타일만 달았지 얼굴 생김새나 몸의 형태가 보아와 똑같았다. 눈을 의심하고 직접 보았다. 역시 분명 보아와 같았다.
‘그렇다면 보희가 내 딸이 아니라는 말인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애정을 가지고 길렀는데.’
충격이었다. 그 날은 그렇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길렀는데, 설령 보희가 내 딸이 아니라 해도 그냥 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몰랐다면 모르지만 이미 알았다면 정확히 조사해 보고 친딸을 길러야하지.’
두 마음이 싸웠다.

일단 주희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초면에 죄송합니다. 미용사 아줌마 친구시죠. 주희 문제로 만나자고 했습니다.”
“주희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요?”
그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하였다.
“그러면 우리 주희가 아줌마 딸이라고요. 말도 안돼요.”
“어디 산부인과에서 낳았습니까?”
“이 산부인과요.”
아이를 분만한 기간도 같고 산부인과도 같았다.
아이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친자 검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다행이 주희 부모는 허락해 주었다. 주희와 보희는 병원의 실수로 바뀐 것으로 판명이 났다. 같은 산부인과에서 이틀 차이로 각각 2㎏, 2.1㎏로 태어난 주희와 보희는 함께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뒤바뀐 것이었다. 보희를 친 부모에게 보내기로 했다. 보희는 소아마비 장애를 앓고 있다. 보희의 친부모는 장애인인 보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아이를 어떻게 길렀기에 이렇게 장애인이 되었요? 그냥 10년 동안 길렀으니까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고 이대로 삽시다.”
“여보, 우리 그냥 아이들에게 알리지 말고 이대로 살면 안 될까요? 가끔 주희 부모랑 서로 방문하며 함께 도와주며 양육하면 안 될까요?”
남편은 설득되지 않았다. 보희에게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 하였지만 보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나 가기 싫어. 보아 언니랑 나 여기서 살래.”
보희는 떼를 쓰면 울부짖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보희를 품에 앉고 같이 울었다.
“보희야, 엄마가 자주 갈게. 너희 친엄마가 나보다 더 잘 해 줄거야.”
장애만 없었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은 더 깊은 것일까?’
친자식을 되돌려 받고 나서도 3년 동안 주희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보희가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몇 번 보희를 찾아갔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곧 보희 친부모는 이사를 하였고 연락이 끊겼다.

보희로 인하여 장애인 봉사를 하였는데 계속 봉사를 하였다. 선생님이 조용히 불렀다.
“보희 엄마, 왜 보희를 장애인 보호시설에 보내었어요.”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리에요.”
“보희가 임마누엘 집에 있던데요.”
“왜 보희가 그곳에 있어요.”
자세한 주소를 물어 임마누엘 집을 찾아갔다.
“보희야, 왜 네가 여기 있어.”
“엄마.”
보희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가시고.”
“친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 왔어요. 술을 먹고 들어 올 때마다 이런 병신을 낳았다고 어머니의 머리를 잡고 끌고 다녔어요. 엄마는 밤마다 아빠에게 맞았어요.”
“보희야, 미안하다. 내가 너를 보내지 말아야 했는데, 미안하다. 미안해.”
“엄마 아빤 이혼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이곳에 나를 보냈어요.”
“보희야, 우리집에 가서 살자.”
“난 갈 수 없어요. 난 누구 딸도 아닌 그냥 병신이어요.”
보희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남편과 상의했지만 남편도 거절하였다. 보희를 만나러갔다.
“이제 찾아오지 마세요. 만나면 더 괴로우니까요?”
그래도 계속 찾아갔다. 보희는 없었다.
“보희가 남긴 거예요.”
담당 선생님은 보희가 마지막 남긴 편지를 주었다.
“감사했습니다. 더 이상 사는 것은 모두에게 짐만 될 것같아 먼저 떠납니다...” 그렇게 보희는 어린 나이에 자살을 택했다.

어떤 짧은 인생/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콩트집 하늘 바구니/200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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