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이원희 한판과 김호곤의 치사함

전병욱 목사 | 2010.07.23 12:00:5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이원희 한판과 김호곤의 치사함 (8.18.2004)

1. 스포츠가 주는 의미 :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는 정정당당함을 보기를 원한다. 부끄러운 금메달보다 자랑스런 은메달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정정당당함이 없는 승리는 더 이상 승리일 수 없다. 일전에 천하장사 대회에서 치사한 삿바싸움으로 천하장사가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선수는 천하장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거의 민심을 얻지 못하고 사라진 것을 기억한다. 당당함 없는 스포츠는 사람들의 마음에 슬픔을 가져다 준다.

2. 이원희의 멋진 승부 :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초반에 그리 많은 금메달이 나오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단 한 개의 금메달이라도 이원희 선수의 금메달은 매우 값진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왜?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경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기도했다는 식의 태도 때문이 아니다. 그는 선수로서 매우 당당했다. 유도 경기를 보면, 시간 끄는 치사한 면들이 있어서 흥미를 반감시켰는데, 그는 항상 당당하게 승부에 임했다. 특히 결승에서는 압도적인 점수를 따 놓고도 공격을 중단하지 않고, 한판승을 이끌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바로 진짜 승부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금메달은 정정당당한 금메달이기에 더욱 자랑스러웠다.

3. 김호곤의 치사한 승리 : 한국인은 축구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축구의 당당함을 사랑한다. 그런데 8강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예선 전인 말리와의 경기는 치욕적이었다. 3:0으로 지고 있다가 극적으로 3:3이 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그러나 3:3이 되고 난 후에 볼을 돌리고, 시간을 끄는 김호곤 식의 축구는 환멸을 가져다 준다. 일전에도 한번 이런 일로 국제적인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이런 일을 반복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부끄러운 8강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스포츠맨으로서의 당당함이 없다. 그래서 부끄럽다. 이런 부끄러움을 딛고, 계속해서 치사한 승리로 치장할까봐 미래가 더 답답하다.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일 뿐이다.  김호곤 식의 접근은 국민 정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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