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어른 존경도

김필곤 목사 | 2011.05.01 23:59:5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어른 존경도

유엔 아동 기금(유니세프)이 아시아·태평양지역 17개국 청소년 1만 73명을 대상으로 어른 존경도에 대한 면접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어른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응답은 13%로 17개국 중 꼴찌고, 17개국 평균 72%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교사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숫자도 꼴찌를 기록, 온갖 권위가 무너진 한국의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존경할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뭔가 편향통계를 내었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각종 조사를 보면 우리의 사회 현실을 반영한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존경을 찾아보면 "높이어 공경함"이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영어의 존경을 뜻하는 리스펙트(respect)는 라틴어 '레스피세레(respicere)'에서 왔다고 합니다. 문자적 의미로 다시 본다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상대방 고유의 개성에 눈길을 돌리는 능력이 존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존경은 대상이 있는 것이고 그 대상을 우러러 받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러러 받들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청소년들의 인성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존경을 받아야 할 대상들입니다. 우선은 존경을 받으려면 권위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권위 부스기에 총력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맨 앞에는 정치인들이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만을 손에 쥐면 다된다는 마키아벨리즘의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어 있는 듯 합니다. 기본적인 예의도, 범하지 말아야 할 선도 없습니다. 메스컴에 방영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5년 내내 국민을 위한 봉사보다는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한 치졸한 싸움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부분들도 많이 있는데 언론은 사건마다 발표하는 대변인들의 말장난 같은 다툼의 소리를 여과없이 보도하고 그들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 "모든 사람은 다 그렇다"는 생각을 어린 학생에게까지 심어주었습니다. 자기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하는 풍토에서는 존경하는 마음이 설 공간이 없습니다.

권위가 모든 것을 말하는 권위주의는 이 땅에서 살아져야 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진정한 권위,
합의된 권위는 서로 존경함으로 이 땅에 우뚝 서게 만들어야합니다.
둘째는 인격의 문제입니다. 대상이 존경할 만한 인격이 되어야 존경할 수 있습니다. 존경은 스스로 우러나는 마음이므로 아무리 능력이 있다할 지라도 인격이 따르지 않으면 존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블레인 리는 [지도력의 원칙]에서 존경을 얻는 10가지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일관성, 친절, 인내, 지식, 자제, 명예... 등 한 시대 지나가 버린 듯한 원칙을 말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가 하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인격은 존경받는 요소 중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고 존경받을 만한 권위의 자리 있다하여도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아부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진정한 존경의 대상은 될 수가 없습니다. 인격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의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칙을 지키는 일관성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어린 아이의 입에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원칙이나 규범, 보이지 않는 가치 보다 황금이 왕노릇하는 세상에서는 인격은 상업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건에 뚜껑 하나만 열면 그 속에는 돈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물건을 만드는 노조원들만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교사도, 법을 집행하는 법관도, 국민 봉사를 최우선으로 해야할 공무원도 심지어는 영혼을 다루는 종교인들마저도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를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경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이 죽고 원칙이 시장 바닥으로 내쫓기며 경제가 목적이 된 사회는 사람의 마음에 경제 원리만 판을 치게 하여 결국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설 곳 없는 마음의 황폐화를 가속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이 성적순이거나 재벌순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인격자가 존경받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문화는 사람 사는 환경이며 물고기가 사는 물과 같은 것입니다. 한 시대의 문화는 문화 향유자 보다는 문화 생산자, 문화 전달자에 의해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 시대를 판을 치고 있는 문화는 긍정보다는 부정, 가치있는 예술성보다는 저질 폭력, 섹스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물론 텔레비전, 신문, 컴퓨터 영상물 등 예외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여과 없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이고 사회 발전적인 주제보다는 비정상적이고 사회 부정적인 주제에 탐닉해 있습니다.

문화가 교시보다 유희에 치중하고 그 유희도 엽기적 유희에 무게 중심을 둔다면 그곳에 인간 존중이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문화 생산자들이 문화의 흐름을 최소한의 양식을 가지고 인간 존중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도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 12:10)"라고 말씀합니다●

어른 존경도/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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