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검은 머리와 흰 머리를 왔다 갔다 하는 이유

이동원 목사 | 2009.12.28 11:45:1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저는 늘 목사라는 삶의 자리가 공인의 자리임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부담이면서 동시에 특권으로 생각하며 살아 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론적으로 의식하는 것과 실천적으로 적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인 것은 물론입니다. 한 동안 제 머리 스타일이 도마에 오른 것을 알고 설교 시간을 빌려 은근한 해명을 한 일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머리 스타일에 관한 한 제게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 머리를 만져 주시는 분들에 의해 결정 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머리 염색에 관한 한 제가 제 자신의 의견을 전혀 피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변명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심경의 변화에 대해 간접적으로라도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 칼럼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검은 머리 염색을 유지하다가 자연스런 흰 머리에로의 전환을 둘러싸고 성도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의 전쟁이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무엇보다 ‘헷 갈린다’는 여론의 전달이 있었기에 격의없는 마음을 전달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시다 싶이 저희 교회는 담임 목사의 연령과 상관없이 젊은 교회입니다. 아마 20대에서 40대 말까지가 전체 교인의 65%이상을 차지할 듯 싶습니다. 이런 젊은 교인들 앞에서 주일 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너무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서는 것이 별로 안 좋아 보일 듯 싶어 어느 날 선뜻 염색의 유혹에 굴복한 제일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무리의 교우들은 이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지지해주신 반면 또 다른 상당한 무리의 교우들은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속히 흰 머리로 돌아가 달라”고 강청 내지는 위협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일단 한번 염색의 길을 선택한 이상 얼마간의 기간은 지속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지켜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가면서 검은 머리 염색을 지지해 주시는 분들의 의견은 침묵 내지는 잠잠함을 유지해간 반면 흰 머리로 돌아가라는 여론은 점 점 더 지칠줄 모르고 맹위를 떨쳐 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몇 몇 권사님들은 애원 내지는 읍소를 하시며 어떤 분은 심지어 평생의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이라는 전달을 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특별히 “기도의 제목”이라는 소리에 마음이 약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슨 통뼈라고 기도의 호소까지 무시할 수가 있겠습니까?

때마침 200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TV에서 새해 멘트를 하는 분들이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가 귓결에 스치면서 아이구 그럼 내 나이도 60이 되는 해가 아닌가하는 자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동시에 그렇다면 나도 이제 나의 늙어감을 자연스럽게 수용할줄 아는 것이 자연의 순리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교회 어떤 어르신 형님에게 드렸던 “황혼은 새벽보다 더 아름다울수 있다”는 교훈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여 증명할 때가 아닌가라는 자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방법은 괜히 젊은 척하는 연기가 아닌 나의 나다운 오늘의 현실을 수용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다시 머리가 흰 머리로 돌아가도록 방치하기로 한 결심의 배경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별것 아닌 것으로 성도 여러분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라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 길에는 때로 이런 별것 아닌 심정의 교감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따뜻해 질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나눈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빌어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마음에 동일한 행복한 늙어 감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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