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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아도 우리는 행복했어요

김복남............... 조회 수 2364 추천 수 0 2012.06.08 15: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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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아도 우리는 행복했어요

 

김복남 연대세브란스병원 원목실 전도사, 은광교회

 

중환자실 앞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퍼머가 풀린 부시시한 머리카락은 눈물이 엉켜 붙어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고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옷 때문에 브래지어 끈이 어깨 쪽에서 삐져 나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럴 수 있느냐면서 소리내어 울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몰리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절대로 이대로 죽어서는 안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은 나를 의사로 오해하고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가 보다 여기면서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나는 그녀를 복도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진정을 시키려고 했지만 그녀는 도통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밀고 당기며 흔들었다. 나는 한참을 그녀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광기에 가까운 울부짖음에 지쳤는지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럴 수는 없어요. 이제 와서 죽어서는 말이 안돼요. 이젠 잘 적응하게 되었단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도 우리는 행복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도 우리는 행복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가 없어 그녀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녀는 실습생 시절 만난, 의식 없는 환자의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를 알게 된 것이 6년이나 되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결혼한 여자라고 믿기 힘들 만큼 소녀스러운 앳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환자인 남편은 여러 차례의 수술로 사경을 헤매느라 그녀의 아버지로 보일 만큼 늙어 보였다.

내가 진짜 아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보는 사람마다 새댁 같다고 그래요. 젊어 보이면 뭐해요. 남편이 이 모양이 되었는데요."라며 자신의 모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하루빨리 남편의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가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무렵 그녀의 남편은 뇌 수술 후 5개월이 경과되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입으로 음식을 삼킬 수도, 일어설 수도, 그리고 말할 수도, 아니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녀는 매일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시간만 있으면 손으로 묵주를 굴리며 기도했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함과는 달리 그녀의 남편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는 이런 일을 꾸민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임상 경험이 없었던 실습생 시절이라 참으로 무지한 짓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딴에는 대단히 좋은 생각이라고 믿고 시도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 아이들을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큰 딸아이를 너무 귀여워했다면서 그 딸아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회사에 가 있으면 그 아이 얼굴이 떠올라서 빨리 집에 오고 싶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했다. 나는 참 잘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그 아이를 빨리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녀는 시골 시댁에 맡겨진 딸아이가 오도록 전화를 했다. 남편이 그토록 좋아한 딸아이를 옆에 두게 되면 빨리 의식이 돌아올 것이라는 나의 제안에 그녀는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나는 그 계획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렸다. 기도가 열흘쯤 계속되었을 때 그녀의 아이가 병원에 왔다. 머리를 곱게 빗어 뒤로 묶은 모습이 여섯 살 치고는 너무 또랑또랑해 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네 아빠를 깨워야 되니까 네가 옆에서 열심히 아빠라고 부르고 노래도 불러 주고 손도 잡아 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귀를 알아들었다. 그러나 아이를 막상 아빠 곁으로 데리고 갔을 때 가까이 가기를 꺼려 했다. 2년 동안 너무 변한 모습이 그 아이로 하여금 쉽게 아빠라고 부를 수 없게 했다.

우리는 빨리 아빠라고 불러 보라고 했다. 아이는 "아빠, 아빠" 하고 작은 소리로 어설프게 아빠를 불렀다. 나는 아빠가 정신이 깨어나도록 더 크게 불러 보라고 했다. 아이는 "아빠! 아빠!"하며 시키는 대로 크게 불렀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사랑하는 딸아이의 부름에도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방법을 달리 했다. 휠체어에 앉은 아빠의 무릎에 그 딸아이를 앉혀 놓고 뽀뽀를 하게 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다.

아이는 시키는 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도 아빠를 깨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는지 몸놀림까지 곁들이면서 재롱을 피었다. 그러나 환자는 무릎 위에서 노래하는 아이를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멍하니 딴 곳만 보고 있었다.

아이는 더 크게 "아빠! 아빠! 나 왔어, 아빠! 아빠!"하고 불렀다 한참을 아빠라고 부르던 아이는 지쳤는지 휠체어에서 내려오면서 "엄마! 우리 아빠 아니야." 아이는 울먹이면서 아빠가 아니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아이에게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아빠가 깨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이냐면서 다시 한번 더 흔들면서 불러 보라고 했다.

아이는 마지 못해 다시 "아빠!"하고 얼굴이 빨갛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우리의 초조함과는 달리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이는 다시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의 울음과 동시에 그녀는 남편의 등을 두들기며 "당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어요? 우리 아이가 왔단 말이에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한 딸도 몰라 봐요…."
그녀는 아이보다 더 크게 울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울었다. 괜한 계획을 세워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나의 무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의 딱함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그런 일이 있은 지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딸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동안 그들은 우리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그리고 또다시 우리 병원으로 몇 차례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녀는 어디를 가더라도 늘 나에게 소식을 전했다.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지 4년이 지날쯤 그녀는 이런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언제쯤 나에게 여보라고 불러 볼 수가 있을까요? 평생을 남편이 일어서고 걷지 못해도 누워서만 살아도 좋으니 의식만 돌아온다면요. 밥을 떠먹여주고 똥 오줌을 받아 내도 좋으니 말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남편이 자기들을 알아보고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함과 나의 기도에도 그의 형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또 1년이 흘렀다. 사고가 난 지 5년이 되었다. 작은 아이까지 학교에 들어갔다. 그녀의 남편은 그 사실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살았다. 이제는 병원에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어 집으로 왔다고 했다. 자기가 반 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집에 있어도 충분히 간호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도 남편이 집에 있으니 든든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크니까 아빠 기저귀도 곧잘 갈아주고 시간 맞춰서 배에 낀 호스에 음식물도 잘 넣어 준다고 했다. 여보라고 불러 주지 않아도, 아이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아도,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남편이 하품을 하면 아빠가 하품을 할 줄 안다고 좋아하면서 웃었다고 했다. 이따금 걸려오는 전화 음성은 무척이나 밝았다.

사람은 어떤 형편이든지 적응하면서 살도록 되어 있는가 보다고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열이 모르면서 여러 가지 기능이 악화되었다. 응급실로 왔더니 위험하다면서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것이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면서 장례 준비를 넌지시 말했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울었다. 의식이 없어도 그전처럼만 된다면 더 이상은 바라지도 않겠다고, 목숨만 살아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살아도 우리는 행복했어요. 살만 했어요. 목숨만 붙어 있으면 더 바라지 않겠어요." 그녀의 그 말은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아내나, 퇴근 후에 집안 일을 거들지 않는다고 남편을 나무라는 아내나, 허구헌날 밥하고 빨래하는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 뒷바라지나 하는 것이 지겹다고 말하는 아내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6년 동안 보통의 아내들이 쉽게 내뱉는 그 흔한 투정을 엄두도 못 내면서 하루하루를 기대와 조바심으로 살았다. 그리고 수없는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과 싸우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평생을 남편을 위해 그 고생을 계속한다 하더라도 살아만 있어 준다면 행복하겠다고 기도하고 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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