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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신앙인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348 추천 수 0 2011.03.24 14: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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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경찰청이 밝힌 '96 자살자 통계현황' 에 따르면 자살자는 모두 8천6백32명. 95년의 7천7백9명에 비해 1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자살자를 원인별로 보면 '신병 등 비관' 이 3천 5백 96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가정불화' 8백 40명, '사업실패' 2백 95명 순이었습니다.연령별로는 30대(2천95명)와 40대(1천9백8명)가 46.4%를 기록, 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증가율에서는 10대가 29.2%로 압도적 증가세를 보였고, 특히 10세 미만 어린이의 경우, 무려 93.2%라는 폭증세를 보였습니다. 원인별 증가율로는 사업실패가 27.7%로 가장 높았습니다. 여중생의 집단 자살과 같은 것도 문제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장로인 전 안기부장의 자살 소동처럼 기독교인들이 이 자살 자 명단에는 다수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인이 꼭 자살로 절망의 늪을 빠져 나올 수밖에 없느냐는 것입니다.
자살은 역사이래 존재해 왔습니다. 문화와 시대에 따라 자살이 미덕이 되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로리오와 줄리엣은 자살이라는 고결한 방법으로 사랑을 이루고 만다는 이야기로 자살에 아름다운 옷을 입혔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고호, "여자의 일생"의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모파상,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고대 로마 네로 황제의 스승인 세네카, 헤밍웨이 등과 같이 이름 있는 사람들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사티(순사)라 하여 과부는 죽은 남편의 화장장에 뛰어들어 자결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인들의 '하리끼리' 아프리카 한 부족의 왕과 함께 자살하는 풍습은 당시 사회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디즘의 원조랄 수 있는 프랑스 작가 사드는 "자살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자신의 생사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여 자살 긍정론을 주장하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기원전 1 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에는 가장 좋은 자살의 명분과 방법을 가르치는 자살 학교가 있었다 합니다. 로마 제국에는 영웅적인 행위로서의 자살을 권위했고, 불치의 병고나 노고(老苦), 씻을 수 없는 불명예,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 집행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할 때 무료로 독약을 주어야 하게끔 돼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살이라는 것이 부모가 물려준 신체를 훼손하는 것으로 터부시되었지만 정조를 상실한 여인의 자결처럼 명분있는 자살이 칭송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살도 결코 미화될 수도 정당화될 수도 없습니다. 교회사를 볼 때 6세기 이후에 자살을 무서운 죄로 취급했습니다. 13 세기에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은 타살보다 죄가 더 무겁다는 해석을 하였습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자살자가 지옥에서 받는 책고(責苦)를 타살자 못지않게 가혹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18 세기 유럽에서 자살미수를 하면 완전히 치료시킨 다음 교수형에 처했고, 자살에 성공하더라도 말로 하여금 그 시체를 끌게 해 만인에게 공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살자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시체는 교회 묘지에 매장되지 못했습니다. 1961년 영국이 자살 금지법을 폐지하기까지 자살은 철저히 죄악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성경은 자살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성경 속에도 자살한 인물이 나옵니다. 아비멜렉은 이복 형제 70명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으나 집권 3년 만에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자결하였습니다(삿9장). 사울은 초대 왕이었지만 결국 스스로 자기 칼을 취하여 자결하였습니다(삼하31:4). 아히도벨(삼하17장), 시므리(왕상16장), 유다(마27장) 등도 자살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의 자살 사건에 대하여 논평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자살을 묵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살이 하나님께 대한 커다란 범죄라는 것은 제 6계명에 근거해서 볼 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인간들이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정면 도전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창조자
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고유영역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라는 제 6계명은 자신의 생명에도 관계된 명령입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자결할 때 바울과 실라가 취한 행동을 우리는 주시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결로 자신의 극한 상황을 탈피하려던 간수장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라며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도 자살을 정당화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살 연구의 권위자 뒤르켕은
자살을 이기적인 자살과 이타적인 자살로 나누어 종이 주인과 함께 죽는 것이나 추종자가 족장과 함께 죽는 것은 사회적인 의무나 강제력에 의하여 자살하는 이타적 자살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터툴리안이나 오리겐 슈바이처 등은 예수님이 죽으실 줄 알고 예루살렘에 갔으니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을 자살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순교니 순국이니 희생 등의 용어를 붙여 이기적이고 도피적며 파괴적인 자살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이타적인 희생과 자살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자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자살은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일 뿐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범죄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극한 상황일지라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은 울 기력도 없고 죽음의 문턱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도달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통하여 힘을 얻고 일어섰습니다.(삼상30:6)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저주하기보다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우리 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겠지만 결코 자살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980329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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