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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 목사 | 2013.06.26 07:27: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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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휴전

 

세계 1차 대전이 다섯째 달로 접어든 1914년 12월 24일 저녁에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럽 변방 곳곳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급조한 참호 속에 아무렇게나 몸을 웅크린 채 추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전장에 땅거미가 깔릴 무렵,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일군 병사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수천 개에 촛불을 붙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위문용으로 보내진 자그마한 트리였습니다. 트리를 밝힌 병사들은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밤”을 시작으로 여러 곡이 이어졌습니다. 영국군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영국 병사들도 캐럴을 부르며 적에게 화답했고 그들에게 똑같이 열렬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양쪽에서 몇몇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기어 나와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수백 명이 뒤를 따랐고 곧이어 수천 명의 병사가 참호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담배와 비스킷을 건넸으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서로 고향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 크리스마스 추억을 나누었고 이 터무니없는 전쟁을 키득거리며 비웃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크리스마스의 태양이 유럽의 전장 위로 솟아올랐을 때에도, 수천 명의 병사들은 여전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림잡아 10만 명이 넘는 숫자였을 것입니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적이었던 그들은 서로 도와 가며 죽은 동료들을 묻었습니다. 축구 시합을 벌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장교도 가담했습니다. 꿈같았던 '크리스마스 휴전'이었습니다. 전장에 버려진 채 죽고 부상당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용기 있게 제도적 의무에서 벗어나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서로 살아 있음을 축하했습니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감의 시대(제러미 리프킨)”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 철학자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볼품없고 야비하고 잔인하다. 그리고 짧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삶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보았습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그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1.6%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20세기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살상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성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록 전쟁터이지만 성탄절을 맞이하여 잠깐의 휴전을 한 병사들처럼 평화를 꿈꾸고 서로 공감하는 인간성이 있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하루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도 다른 아기가 울면 따라 운다고 합니다. 공감하는 성향이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생후 18개월에서 2년 반 정도 지나면 아기들은 자신과 남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다른 아기가 겪는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반응한다고 합니다.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말씀합니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교수 도널드 케이건은 [전쟁과 인간]에서 "인간이 전쟁을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동기는 경쟁자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이익추구, 명예추구"라고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핵이 전쟁에 대한 억제책이 될 것이라는 가설은 허구라고 주장을 합니다.

핵으로 평화를 보장받고 싶어 했던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예수님은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마 26:52)한다"고 합니다. 핵은 근원적인 전쟁 억제책은 아닙니다. 핵을 보유하면 극한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류의 종말의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평화는 그리스도께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는 핵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왕 예수님께 나와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 즈음에 김정일 장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휴전선 155마일에 그 옛날 있었던 성탄절 휴전이 항구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절, 동토의 땅 북한에도 성탄의 종소리가 울리면 진정한 평안이 깃들게 될 것입니다. 평화를 잃으면 평안도 없고 평안이 없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여호수아 리프맨의 소설,「마음의 평안」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청년이 어느 노인을 찾아가 자기 소원을 부탁하였습니다. 노인은 무엇을 갖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미모이고, 넷째는 재능이며, 다섯째는 권력이고, 여섯째는 명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은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그러나 평안이 없이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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