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절망에서 소망으로

김필곤 목사 | 2011.11.26 17:44:4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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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소망으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서는 사람을 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국가대표 유도선수 정덕환씨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청소년 때 유도 선수권과 대통령배를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안 게임 출전을 앞두고 연습하는 도중에 목뼈가 부러져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같으면 이 정도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그를 절망 가운데 두지 않았습니다. 구멍가게를 시작하여 목돈을 마련한 그는 장애인 수용시설에 사용되는 전자부품 설비를 들여놓았습니다. 직업 재활 시설을 잘 갖추어 놓는‘에덴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에덴 하우스가 연 매출 26억원에 달하자 연구를 하기 위해 대학에 편입했고, 2년 동안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자식같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여 졸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좌절을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기쁨을 심어 주었습니다.

근육무력증에 걸려 사선을 넘나들던 캐롤 버리스의 이야기도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40대 초반에 6명의 자녀를 두고 변호사 사무실의 비서로 일하면서 무용학교를 운영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근육무력증이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기도를 하지만 마음속으로 "오래 살지 못할텐데"하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녀는 심장이나 호흡 장애가 일어날 때마다 그대로 죽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부활절에 찬양대원들이 그녀의 집에 몰려 왔습니다. 그들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을 불렀고 간절히 통성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을 느꼈고 오랜만에 참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병을 위해서, 그리고 살기 위해서 기도하였답니다. 그때 마음속에 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나도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것은 다 무엇인가? 그냥 헛것인가? 내가 신자로 그렇게 믿어야 하겠는가?” “너는 왜 백부장처럼 움직이지 않느냐? 기도를 하고 말씀을 받았으면 행동을 해야지”캐롤 버리스는 우선 자리에 누워있지 말아야 하겠다고 결심했답니다. 일어나서 움직이기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거기서 물러 설 수는 없었답니다. 그녀는 자꾸만 마음속에 들어오는 자멸감의 어두운 그림자를 물리쳐야 했답니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생각했답니다. 사람들의 기도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믿으면 그만큼 마음이 밝아졌답니다. 몸이 불편하고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라고 해서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지 못할 것은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답니다.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담을 쌓은 것은 자신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답니다. 그녀는 병 때문에 어둠에 빠진 다른 이들을 방문했답니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 전에 모르던 새로운 영역이 열리게 되었답니다. "내 생명이 꺼질 때까지 사랑하고 생명을 나누리라" 차츰 몸이 좋아졌답니다. 다시 글을 쓰고 연단에서 강의를 하고 50대 중반의 몸으로 교회 사무직을 보게 되었답니다. 어느덧 병은 완전히 사라졌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알았다. 기도를 사용하련다. 마치 은행에 맡긴 돈을 찾아 쓰듯, 하나님께 드린 그 수많은 기도의 말을 나는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인가 다시 오더라도 나는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내 생명의 마지막 촛불을 사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만나면 좌절합니다. 야스퍼스는 인간에게는 반드시 죽음·병·피할 수 없는 죄 등의 극한상황(極限狀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인간은 심각한 유한성을 의식하고 좌절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인식의 한계, 지식의 한계, 시간의 한계, 건강의 한계 등으로 어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때 사람은 좌절하게 됩니다. 한계가 다가오면 좌절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계를 초월하신 분을 만나면 됩니다. 내가 못하는 것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죽음의 한계, 죄의 한계, 능력의 한계 등을 극복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한계가 다가오면 진정 겸손하고 간절하게 우리의 모든 한계를 극복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할 때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하인리히는 그것을 '1대 29대 300'의 법칙으로 정립했습니다.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나기 전에는 29건의 경미한 재난과 300건 이상의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법을 택하면 목적은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적 방법으로 다 해 보아도 않 될 때 좌절하지 말고 믿음의 방법을 택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고 기도해도 현실에서 자신의 뜻대로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끝났다고 좌절하지 말고 모든 것을 과정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죽음마저도 또 다른 세계를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죽음까지도 소망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김필곤 목사/섬기는 언어/200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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