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을이 바라보는 풍경

이주연 목사 | 2012.07.07 20:49:5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저녁 식사를 한 후, 구두를 넣고 등산화를 꺼내 신었다.

낮의 피로가 쌓여 발이 아프지만,

등산화 끈을 당기니 전신이 가뿐해졌다.

 

우리의 곁을 떠나버린 두 형제를 찾으러 서울역으로 나갔다.

그들이 다시 옛 삶의 길로 되돌아 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그 냄새가 떠올랐다.

나는 너무나 여러 번 다시 무너지면 더 심각해 진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꼭 돌아오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리로 나온 것이다.  

 

한 형제는 포천 해맞이공동체에서 생활하다 말 없이 나가버린 C이다.

그는 아직은 젊다. 그러나 정신쇠약적인 고통 속에

자존감을 잃고 홀로 거리에 머물게 된 경우다.

 

그러나 일년 여 함께 예배 드리고,

사랑의 농장 숲에서 노동하고, 제주도 올래길 여행도 하고,

노래를 배워 산마루교회 수준 높은 일반예배 찬양대원으로까지

자리를 잡아가던 이였다.

 

또 한 형제는 앞으로 저와 함께하면서

남을 돕는 일로 일생을 드리고 싶다던 J이다.  

그는 내가 사랑의 농장 운영의 팀장을 맡기려고까지 하였던 분이다.

 

서울역 14번 출구 앞 PC방부터 몇몇 PC방을 살폈다. 

모두 없었다. 서울역 전체를 살피며 돌았지만 허탕이었다.

 

오늘의 서울역은 내겐 예전의 서울역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일 줄이야!

 

서울역은 공원이요, 친구의 집이었다.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으랴!

그 좋은 대형화면의 TV, 천장이 높은 홀,

화강암으로 깔아놓은 역사 주변은 휴식처요

늘 야릇한 흥분이 맴도는 공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구석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술 취한 노숙인의 주정이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마치 친구의 비행을 목격한 창피한 기분이다.

 

어두운 곳으로 옮아갈수록 고통의 현장이 펼쳐졌다.

술 취하여 쓰러져 있고, 박스를 깔고 잠자리를 만들고

구걸을 하고, 모자를 눌러 쓴 채 술판이 벌어지고……

술 냄새, 담배 냄새, 술취한 소리.......

 

어둠 속에서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낯을 피한다. 찾는 형제는 아니었다.

나도 보지 못한 척 눈길을 피하였다.

 

서울역을 벗어나와 서소문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쉼터로 갈 셈이었다.

 

마침 파출소가 길 곁에 있기에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자 들어갔다.

수고하십니다. 구세군 쉼터 부릿지 어디로 가지요?”

 

순간 경찰관의 낯빛이 바뀌면서 동정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그곳에 들어 가시게요?.....!”

아주 잠시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참으로 이렇게 인간적인 경찰관도 다 있었나!

 

나는 오갈 데 없어 서울역에서 헤매다가 밤이 깊어오자

노숙자 쉼터를 처음으로 찾는 이가 된 것이다. 

순간 나는 이 세상에 대하여

갑에서 을로 위치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파출소를 나와 나는 노숙자가 된 기분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걷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이 접근할 수 없는 성곽처럼 느껴졌다.

 

나뿐 공기를 일으키며 달리는 자동차가

힘센 가해자처럼 나가왔다가는 사라져버린다.

저들은 나쁜 공기 들어올까 더운 바람 들어올까

문을 꼭꼭 잠그고 냉방을 하고 달리고 있군!

그런데 아, 그것이 바로 나였지! 

 

통유리의 화려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고급 커피집들, 베이커리, 정겨운 연인들….

이 찬란한 거리의 밤 풍경들!

그러나 정작 거리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바로 이 거리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나는 이들 중 배낭을 진 어둔 색의 사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로 그 이인가?” 하며 살폈다.

어떤 이는 눈을 피하고, 어떤 이는 반가운 듯,

어떤 이는 시비조의 느낌을 반사한다.

 

나는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그분은 놀라며 누군가 하더니,

저를 기억하세요?

저는 요즘 산마루교회 잘 안 가는 데요!”

그럼 제가 왜 기억을 못합니까?”

 

저는 날도 덥고 배낭이 무거운 듯 보여

길거리 노점에서 시원한 것이나 한잔 하자고 하였다.

 

저는 술은 안 해요.” 한다.

글쎄 시원한 음료나 하시죠!”

그는 부담스러운지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을 반기면서도

끝내 일이 있다며 사양을 한다.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의 발길은 더 빨라만 진다. <다음

 

 

*사진-노숙인 형제들과 함께 떠났던

 제주 올래길 찻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덕은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의로움을 
완성시켜 줍니다. <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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