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을이 바라보는 풍경3

이주연 목사 | 2012.07.07 20:49:5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너무 발이 아프다. 발가락 사이와 발바닥이 아프다.

설악산도 3일이면 종주하던 실력이 어디 갔나?

이 거리와 나의 몸은 궁합이 안 맞는가 보다.

아니, 보도 블록과 산길의 차이가 뭔지를 내 몸이 알아차린 것이다.

 

순간 산이 그리워진다. 설악산이!

냄새와 바람과 금강소나무향…….

백담의 흐르는 물, 그 소리! 그리고 수렴동 계곡, 봉정암…….

그 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산 기운 머금은 바람을 마시고 싶다.

그립다, 갑자기, 고향처럼.

 

그러나 내 발길은 멈추어 섰다.

횡단보도다. 길 건너에 빨간 불이 아무 생각 없이 빤히 쳐다본다.

나도 아무런 감정 없이 그냥 멈춰 바라본다.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이 이상한 풍속에 내 뇌도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이 동네에선 서로의 눈빛을 보면서도

그렇게 바라보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나는 아까 쉼터를 찾아갔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닫힌 철문 너머로  

사람 찾으러 왔습니다!” 하면서 문을 흔들자,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노숙인 형제가

발 빠르게 달려가 직원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즉시 나온 직원은 철문을 열지 않은 채,

철문 안에서 격의 없이 누구냐고 묻는다.

산마루교회에서 온 이주연 목삽니다.  

형제 몇 사람 찾으러 왔습니다.”

 

우리는 산행 중에 만난 사람만 같았다.

원한다면 물 한 잔이라도 줄듯한 필이 오간다.

내게 누구를 찾으러 왔느냐고 이름을 묻는다.

“Coo, Jxx 오늘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오늘 명단에 없습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다른 형제들의 이름을 더듬더듬 여럿 댔다.

아무도 모르는 듯하였다.

 

그래서 마당발인 LSK 형제의 이름을 댔다.  

뚱뚱한 분 말씀이죠?

오늘 낮에 왔다가 가고, 저녁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뜻밖에 그가 왔다가 갔다는 소식이 위로가 되었다.

허탕은 아닌 셈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그 직원과 통했기 때문이다.

 

내게 격의 없이 대답해준 직원이 

노숙자 출신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으로 안다.

그런 이는 잘난 채 하는 냄새가 없다.

위압적이지도 않고 예절로 거리감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맹물들이다. 목적의식마저도 없이 그저 잘해준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노숙자들 속에서도 돕는 부류가 있다.

이미 망한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연민을 갖는 부류들 말이다.

이렇게 영혼이 가난해져 가는 이들이 간혹 있는 것이다.

망하는 것도 때론 축복이다.

가난한 마음에 이를 수 있으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 부류를 나는 곧잘 골라내곤 한다.

나도 늘 연민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인지 모른다.

누구나 가졌든 못 가졌든 다 놓고 떠나야 하는 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어찌 뭇 인간들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포천 산마루 해맞이 공동체의 K가 떠올랐다.

그가 수년 전 만났을 때부터 그러하였다. 한량이다.

바람 따라 기분 따라 오가지만 늘 같은 처지의 노숙인들을 돕고 산다.

모진 데가 없다. 내가 하자는 대로 이의 없이 한다.

제 생각이 있고, 제 속이 말짱한데도 말이다.

그는 없으면 벌어서도 남을 보태준다.

그도 이따금 무슨 이유에선지 집안에 보탤 일이 일어나는지

가끔 궁색한 소리를 하지만 마음만은 늘 돕는 사람이다.

 

사실 나는 늘 그들과 이런 소리를 주고 받는다.

어차피 다 망했는데 더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닥을 쳤으니 이젠 오를 일만 남았네요!”

 

그러나 그 많은 것을 가진 재벌도 근심 걱정 속에서 살듯 

노숙인들 역시 근심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근심 걱정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질환이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몰려서 건너간다. 

어느새 빨갛던 눈이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길을 건너자 어디선가

날 부른다.

"목사님!" <다음>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오늘 이 순간은 어제 숨진 이가
그토록 얻고 싶었던 바로 그날입니다. <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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