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신앙으로 성공한 벽돌공의 아들

김학규 | 2009.02.06 11:23:2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존 와나메이커(John Wanamaker)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그레이 페리 지역에서 1883년 7월 11일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벽돌을 만드는 가난한 기술자였습니다. 그가 소년이 되었을 때, 그도 벽돌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헌금을 해줄 것을 성도들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와나메이커는 주머니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벽돌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한 수레 분량의 벽돌들을 사서 그것을 교회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등대로 삼고 성경적인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인물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어린 와나메이커의 믿음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교회건축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1851년 그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주급 1달러 25센트를 받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해에는 주당 2달러 50센트를 벌 수 있는 조그마한 옷가게에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1858년에는 YMCA를 창설하고 풀타임(full time) 간사로 4년간을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57명의 젊은이들이 그곳에 있었지만, 1년 후에는 2,000명 이상의 크리스천 형제들이 모이는 곳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859년에는 그가 베다니 교회학교를 세웠는데, 주일이 되면 그곳에 27명의 아이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학교도 부흥이 되어 약 4,000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성경을 공부하는 거대한 바이블 스터디 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곳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교회학교였습니다.

1860년에 그는 “메리 어링거 브라운” 자매와 결혼을 하고, 일 년 후에 “오크 홀”이라는 남자 어린이와 어른의 옷들을 파는 가게를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 사업을 하게 되었지만 장사는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양심 바르게 품질이 좋고 싼 옷들을 정찰제로 팔았습니다. 어떤 상술이나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믿음의 정신을 갖고 고객을 왕으로 모신다는 신조로 일을 했습니다. 만약 옷을 사간 고객이 마음에 안 들어 환불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그 대금을 돌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미군부대에 군복들을 만들어 납품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미국의 체신부장관으로 중책을 맡아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적인 마인드를 갖고 경영하게 된 사업들을 통하여 그는 큰 성공의 밭들을 일구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되고 10대 재벌 안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큰 재벌이 된 그를 취재하기 위하여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와나메이커 회장님! 일생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그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하여 와나메이커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 일생 중에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내가 12살 때 2달러 50센트를 주고 붉은 색의 가죽성경을 산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성공적이고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그는 평신도였지만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늘 마음 판에 새기고 살았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난 한 소년이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성공하기까지 그의 삶을 인도하고 지켜주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견고한 믿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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