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야기2016년 하나님의 › 속죄론(贖罪論)2

최용우 | 2016.12.05 13:19:1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660번째 쪽지!


□속죄론(贖罪論)2


11세기와 12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물음’이 제기되었고 이때부터 속죄론은 예수의 성육신에서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전에는 기독교의 상징이 물고기였으며 비로소 십자가는 11세기부터 기독교의 상징이 됩니다.
안셀무스는 ‘왜 하나님―인간(Cur Deus Homo)’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영광을 돌려드리지 않아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고로 이 죄를 갚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하는데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자 인간인 예수가 필요했다.”며 예수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만족하셨다는 ‘만족설’을 주장합니다.
안셀무스가 ‘만족설’을 발표한 30년 후에 아벨라르드는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무죄한 아들의 죽음을 기뻐하실 수 있는가?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을 달래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드러낸 위대한 사건으로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붙이는 것이다”라며 ‘도덕적 모범설’을 주장합니다.
이후에 속죄론은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하나로 합쳐져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福音)의 형태로 다듬어집니다. 물론 초대 교부들, 오리겐, 이레니우스, 칼빈, 토마스 머틴, 칼바르트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속죄론’을 이야기 했지만 크게 보면 안셀무스와 아벨라르드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속죄론의 중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용우


♥2016.12.5. 달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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