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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20일에 띄우는 일천사백일흔세번째 쪽지!
□ 춤을 춘다
갈릴리마을 세탁장에 있는 세탁기는 뚜껑이 떨어져 어느 때는 뚜껑을 열어놓고 세탁기를 돌립니다. 화분에 줄 물을 뜨러 세탁장에 갔더니, 뚜껑 열린 세탁기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열심히 윙윙 소리를 내며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든 말든 세탁기는 거품을 뿜으며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이의 노란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잠옷과 아내의 팬티가 서로 달라붙어 너물너울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의 양말과 밝은이의 스카프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겉옷, 속옷, 빨간옷, 하얀옷, 큰 옷, 작은 옷, 양말, 스카프, 팬티... 모두모두 어울려 까르르 깔깔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고 거부하고 구별하고, 누구는 거룩하고 누구는 속되고, 누구는 더럽고 누구는 깨끗하고 그런 것 없었습니다.
모두 이렇게 짝이 되었다가 또 저렇게 짝이 되었다가, 아내가 넣어준 가루비누로 거품놀이를 하며 한덩어리가 되어 서로 꼬옥 부등켜 안았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풀렸다가 또 어느 한 순간 팔과 다리를 꼬았다가, 발과 엉덩이가 만나기도 하고, 브래이저와 손수건이 뽀뽀를 하기도 하고... 세탁기 속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아름다운 어울림 공동체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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