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참된 기쁨

2019년 하동 최용우............... 조회 수 194 추천 수 0 2019.11.14 08:46:22
.........

hb6511.jpg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511번째 쪽지!


□참된 기쁨


기독교는 하나님을 만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참된 기쁨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일 때 온다는 것을 알고 하루에 일곱 번씩 찬양합니다.(시119:164) 일곱 번을 세어가며 찬양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틈만 나면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재미’를 찾아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취미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채널이 100개가 넘지만 그 어디에도 재미는 없습니다. 먹방과 연예인들 사생활 들여다보는 게 진짜 재미있어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술에 취하고 그러나 그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나면 허무함만 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재미’를 찾지만, 그것은 재미가 아니고 ‘기쁨’입니다.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기쁨과 비슷해 보이는 ‘재미’를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는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재미있어도 마음 한 구석에는 허무함, 허전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어떤 기운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것인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기운)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불러내면, 마치 향기처럼 기쁨이 뿜어져 올라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가장 쉽게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제가 하루에 일곱 번씩 찬양을 해 보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참된 기쁨의 근원이 바로 내 안에 계신 하나님 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여 그 기쁨이 뿜어져 올라와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최용우


♥2019.11.14. 나무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1'

임경수

2019.11.14 18:39:3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73 2020년 예동 새로운 삶 [1] 최용우 2020-10-16 174
6772 2020년 예동 하나님 사랑이 내 안에 [3] 최용우 2020-10-15 206
6771 2020년 예동 하나님 안에서 사랑 [2] 최용우 2020-10-14 177
6770 2020년 예동 좋은소식과 나쁜소식 [1] 최용우 2020-10-13 229
6769 2020년 예동 충분한 기도시간 [1] 최용우 2020-10-12 179
6768 2020년 예동 유교와 기독교 [1] 최용우 2020-10-10 202
6767 2020년 예동 똥방구 최용우 2020-10-08 124
6766 2020년 예동 문명전환과 기독교 file 최용우 2020-10-07 904
6765 2020년 예동 새로운 예배 [3] 최용우 2020-10-06 350
6764 2020년 예동 그때 하나님과 지금 하나님 [1] 최용우 2020-10-05 216
6763 2020년 예동 웃음천국 울음지옥 [1] 최용우 2020-09-30 266
6762 2020년 예동 공회 공교회 공동교회 [3] 최용우 2020-09-28 214
6761 2020년 예동 세계정복의 역사 [1] 최용우 2020-09-26 182
6760 2020년 예동 신자유주의와 민주공화국 [2] 최용우 2020-09-25 178
6759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일곱 번째 말 최용우 2020-09-24 110
6758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여섯 번째 말 최용우 2020-09-23 102
6757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다섯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22 112
6756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네 번째 말 [2] 최용우 2020-09-21 152
6755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세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19 166
6754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두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18 156
6753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첫 번째 말 [2] 최용우 2020-09-17 169
6752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일곱 번째 말씀 [2] 최용우 2020-09-16 145
6751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여섯 번째 말씀 [2] 최용우 2020-09-15 124
6750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다섯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14 127
6749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의 네 번째 말씀 [3] 최용우 2020-09-12 235
6748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세 번째 말씀 [3] 최용우 2020-09-11 251
6747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두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10 209
6746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첫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09 240
6745 2020년 예동 예수와 클라우디아 [2] 최용우 2020-09-07 284
6744 2020년 예동 예수와 채찍질 [1] 최용우 2020-09-05 224
6743 2020년 예동 예수냐 바라바냐 [1] 최용우 2020-09-04 221
6742 2020년 예동 예수와 안티파스(안디바) [1] 최용우 2020-09-03 180
6741 2020년 예동 예수의 왕권 [3] 최용우 2020-09-02 175
6740 2020년 예동 예수와 빌라도 최용우 2020-09-01 149
6739 2020년 예동 강요 최용우 2020-08-31 150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