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랍비와 목사

2018년 예수나의 최용우............... 조회 수 368 추천 수 0 2018.02.20 10:13:04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010번째 쪽지!


□랍비와 목사


③율법교사들(랍비)이 있다. ③목사들에게 축복권이 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유대의 장로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사43:27)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마15:1-3) 장로들의 유전과 율법의 세칙들이 유대인들을 억압 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앞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장로들의 유전과 율법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까지  잡아 죽이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리하여 AD 70년경 로마가 이스라엘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유대인들은 더 이상 장로들의 유전과 율법을 따른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사라졌습니다.
유대교의 주류가 된 바리새파는 성전 제사 대신 토라를 공부하였고 토라를 가르치는 선생(랍비)와, 토라를 공부하는 학교(예쉬바)와, 토라를 선포하는 회당(시나고그)가 유대교의 중심이 되어 오늘날까지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랍비(Rabbi)는 그들의 정신적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도 없는 민족이 2천년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랍비(Rabbi)제도 때문입니다. 랍비는 제사장도 아니고 서기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매우 철저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랍비가 양성되기 때문에 유대교의 정신적 중심이 되어 각종 행사와 의식을 집례 합니다.
기독교의 ‘목사’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랍비가 필요했던 것처럼 기독교에도 목사가 필요해서 생겼다고 봅니다. 고로 목사는 제사장도 아니고 서기관도 아닙니다. 더욱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의 계보를 이어받은 것도 아닙니다.
여러 가지 병(病)에 대한 전문가가 ‘의사’인 것처럼,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전문가가 ‘목사’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의사’에게 각종 권한이 주어지는 것처럼, 여러 과정을 거친 목사에게도 그런 권한이 주어진 것입니다.
유대 랍비가 유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제사장이나 서기관 흉내를 내서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목사도 존경을 받으려면 성경에 나오는 제사장이니, 서기관이니, 사도, 제자 이런 흉내를 내면 안 됩니다. 랍비처럼 철저하게 자기 실력을 쌓고 그 내공으로, 진정성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에게 있었던 ‘축복권’이 목사에게도 있는가?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 공부하고 진료를 하면서 쌓인 임상 실력과 내공이 있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는 일반 교인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 기도를 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목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훨씬 잘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축복권’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능력’인 것 같습니다. 고로 게으른(?) 목사의 축복은 아무런 힘이 없는 ‘덕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최용우


♥2018.2.20. 불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18 2019년 하동 성경은 하나님의 책 [1] 최용우 2019-03-16 205
6317 2019년 하동 파노라마 성경 [5] 최용우 2019-03-15 179
6316 2019년 하동 임마누엘 성경 [2] 최용우 2019-03-14 287
6315 2019년 하동 동행 성경 [1] 최용우 2019-03-13 169
6314 2019년 하동 사랑 성경 최용우 2019-03-12 222
6313 2019년 하동 갇혀있는 성경 [4] 최용우 2019-03-11 177
6312 2019년 하동 성경에게 읽히기 최용우 2019-03-09 190
6311 2019년 하동 감정적인 성경읽기 최용우 2019-03-08 169
6310 2019년 하동 지식적인 성경읽기 [1] 최용우 2019-03-07 171
6309 2019년 하동 잘못된 성경읽기 최용우 2019-03-06 262
6308 2019년 하동 타는 목마름 [5] 최용우 2019-03-05 317
6307 2019년 하동 그리스도인의 태도 최용우 2019-03-04 253
6306 2019년 하동 이름 부르기 [1] 최용우 2019-03-01 278
6305 2019년 하동 달은 어디에 떠? [1] 최용우 2019-02-28 403
6304 2019년 하동 건강하게 살려면 최용우 2019-02-27 308
6303 2019년 하동 예수님이 오시든 말든 [2] 최용우 2019-02-26 252
6302 2019년 하동 설교가 필요 없어야 함 [3] 최용우 2019-02-25 204
6301 2019년 하동 영적 치매 최용우 2019-02-23 340
6300 2019년 하동 육적 치매 최용우 2019-02-22 217
6299 2019년 하동 간(肝)의 용량은 12시간 최용우 2019-02-21 323
6298 2019년 하동 이해와 오해 [3] 최용우 2019-02-20 335
6297 2019년 하동 그리스도인 [1] 최용우 2019-02-19 322
6296 2019년 하동 같이가기 최용우 2019-02-18 161
6295 2019년 하동 따라가기 [1] 최용우 2019-02-16 185
6294 2019년 하동 앞서가기 최용우 2019-02-15 200
6293 2019년 하동 아름다운 들꽃 최용우 2019-02-14 199
6292 2019년 하동 아직도 내가 최용우 2019-02-13 166
6291 2019년 하동 3M(쓰리엠) 최용우 2019-02-12 228
6290 2019년 하동 동행의 흔적 [2] 최용우 2019-02-11 271
6289 2019년 하동 두 나라 최용우 2019-02-09 277
6288 2019년 하동 생산자와 소비자 최용우 2019-02-07 223
6287 2019년 하동 유일한 것 최용우 2019-02-05 250
6286 2019년 하동 성령님과 기(氣) [2] 최용우 2019-02-04 242
6285 2019년 하동 인간과 짐승 최용우 2019-02-02 243
6284 2019년 하동 나의 진심 고백 [1] 최용우 2019-02-01 212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