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순결

운영자............... 조회 수 672 추천 수 0 2004.03.17 11: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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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순결



성은 신성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성을 만드신 후에 남성 홀로 있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을 만들어 함께 있도록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남자로 태어났건 여자로 태어났건 그 이상의 다른 원인은 없습니다.

불행히도 성을 지저분하게 여기거나 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성은 그 자체로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고 이는 세상에 죄가 침투해 오기 이전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되려면 성관계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마치셨을 때에(성적인 것도 포함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좋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7장에서 바울은 배우자에 대한 서로의 책임에 관해서 언급할 때 결혼한 사람들의 정상적인 성행위가 부인할 수 없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성에 관해 솔직하다 성서는 성에 관해서 매우 진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가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책"임을 생각해 볼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성서는 사람들의 문제에 관해 언급하는 동시에 그 해결책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거기에 더하여서 구원과 사람이 가져야 할 소망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함과 동시에 성도 존재하기 시작했으며, 이 둘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에 관한 어떤 토의에서도 인간의 성에 관한 것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성서는 요셉에 대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대해 말하고; 디나의 강간사건이나(창 34: 1-17); 유다의 유혹(창 38: 1-23); 이스라엘인과 이방여자의 간음(민 25: 6-9); 삼손의 어리석음(사 14: 1-3; 16: 1-4); 다윗의 간통(삼하 11); 다말과 암논의 근친상간(삼하 13: 1-9); 어떤 종파의 독신 생활(마 19: 10-12); 이방인의 동성애(롬 1: 18-27); 그리스도인이 계모를 아내로 취한 일(고전 5: 1-5)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서에서 이런 일들에 대해 읽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우리가 보다 순수해 지도록 고무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성을 추하고 타락된 것이라고 여기게 된 원인은 그것을 타락시키고 잘못 이용한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잘못 이용하게 되면 저주로 바뀌게 됩니다. 이 법칙에 예외는 없습니다. 구원과 관계된 것이라도 그것을 악용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2: 20-22을 읽어 보십시오. 그것은 성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쓰면 그것은 최고의 축복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만일 부정하게 사용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규칙

성에 관해서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한 가지 간단한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담을 두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담은 "결혼"이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 담을 벗어난 성행위는 잘못이며 죄이고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예외를 찾으려는 생각은 쓸 데 없는 짓입니다. 예외는 없으니까요. 또한 그런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혼전 성교나 혼 외 정사도 역시 하나님이 두르신 담을 벗어난 것이므로 죄이며 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 그러한 담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만 영원히 선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성은 강력한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의 생활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의 하나는 성관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정서적인 만족의 원천이 되기도 하므로 이것이 성교의 힘을 배나 더 강력한 것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이것도 통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동차의 힘이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시간에 걸쳐 이론과 실기를 학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운전자가 자동차를 확실히 다루기를 원합니다. 그래야만 본인도 좋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스트리키니네는 치명적인 독이지만 잘 처방하여 사용하면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불소도 역시 독약이지만 적량을 섞어 쓰면 치아에 좋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과 축복은 거의 그 통제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강력한 것들은 적절히 통제되어야만 합니다. 분노를 멋대로 날뛰게 두면 누군가가 고통을 받게 되며 때로는 살인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환경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스스로의 충동을 절제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성도 역시 자신은 물론 남을 다치게 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또는, 다른 한 사람을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밀착시키고 함께 사랑 받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 미혼 남성과 여성은 우리의 성적 충동을 스스로 자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새 도덕과 낡은 부도덕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자유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무절제한 성적 표현이 완전한 자유라고 하는 발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에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적인 문란이 곧 자유의 길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습관적인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술이나 마약, 또는 환각제에 탐닉하는 것처럼 성에 탐닉할 수가 있고, 성적인 문란은 그 종이 되는 것이지 결코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극복하는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절제합니다. 간음이 습관화되면 성은 그 아름다움을 잃고 그 대부분의 기쁨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새 도덕"은 결국 옛 도덕의 타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추한가? 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문제인 것입니다.

성은 우리의 언어 가운데, 어머니, 가정, 사랑, 아기등의 아름다운 말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추하고 폭력적인 것들과도 연관이 있으며 강간, 근친상간, 간음, 성병 등과도 연관됩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거나 하는 것은 우리가 성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느냐 아니면 밖에서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담 안에 있을 때에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적문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흔히 성적인 절제가 생리 및 심리적으로 해롭다는 말을 합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는 성적 기능이 사용하지 않으면 약화된다 고까지 주장합니다. 물론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관계를 절제하는 것이 결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성적인 문란이 신체와 정신에 해를 끼친 수 많은 예를 우리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용된 성의 결과와 절제된 성의 결과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란한 성의 결과는 죄의식, 수치심, 질병,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지옥까지 이르게 되며, 제대로 절제된 성은 순수, 행복, 자신감, 친구, 건강, 명성을 얻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천국에 이를 것입니다.



성적인 문란은 죄의 그물을 짠다

성적인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이며 또한 그 자신을 거역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상대방에 대한 죄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죄인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것은 또한 결혼한 배우자에 대한 죄가 됩니다. 흔히 성적으로 문란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순수하게 살아 왔다고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보통 문란한 성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자신들의 행위를 덮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살인사건 역시 대부분 성적인 부도덕에 의해 유발되곤 합니다. 다윗의 타락의 결과는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했습니다.(삼하 11:)

간음한 사람이 결혼하면 또 다른 죄를 파생하게 됩니다. 간음하는 사람은 대체로 그 가족에게 쓰여져야만 할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그 일을 위하여 쓰곤 합니다. 그 결과로 자녀나 배우자는 그의 배우자가 죄를 짓기 위해 쓰는 것만큼 필요한 것을 공급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혼은 간음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모든 배우자들이 상대의 간음을 용서하고 계속해서 살아 갈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 때문입니다. 때로는 혼전의 성적 문란이 원인이 되어 이혼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는 쌍방의 모두에게 그런 허물이 있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서로 "함정에 걸려" 결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성적인 죄의 특징

성적인 죄는 다른 종류의 죄와는 다른 특이한 본성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자위 행위를 제외한 성적 행위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적인 죄를 짓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동시에 그 죄에 가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둘째, 성은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교 행위는 육체적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한 공감이 필요하고 대상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 관계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될 때에 정서적인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사람이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면 이는 대상을 한 사물로 보고 이용한 다음 버린다는 결론이 됩니다. 인간을 물질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물건과 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결국 그 애정이 일방적이고 인격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한 물건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물건에는 똑같은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유혹

간음만이 성적인 부정이라는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의 유혹에 의하여 희생이 되곤 합니다. 보통 남성은 여성을 보거나 생각함으로써 성욕을 품게 됩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노출하는 옷을 입거나, 비치게 입거나, 달라붙는 옷을 입는 것은 결국 이를 보는 남성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추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상적이니까요. 현숙한 여성이라면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은 접촉에 의해 성적인 욕구를 갖게 되는데 결혼한 상대가 아닌 여성을 만지거나 잡거나 껴안는 남자는 결과적으로 그 여자를 타락시키는 셈입니다. 여성은 그들의 의복이 무의식 중에 유혹이 될 수 있음을 알 필요가 있으며 남성은 부지중에 그들의 손이 잘못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미리 조심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그 사고 방식에 있어서 실제적인 원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는 산상 설교에서 눈으로 인하여 마음으로 죄를 짓게 되는데 대해 지적하고 계십니다.



일렀으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 28).



또한 베드로는;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 . "(벧후 2: 14).

물론 어떤 도덕 군자일지라도 정말로 매력적인 이성을 볼 때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욕망은 피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죄의 환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부정한 성의 대가

회개하지 않는 한 부정한 성행위의 궁극적인 벌은 지옥에서의 영벌입니다(갈 5: 19; 히 13: 4; 계 21: 8). 그러나 성적 부도덕을 반대하는 근본취지가 종교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법적인, 도덕적인, 신체 및 정서적인 면에서의 취지들이 있습니다.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동거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는 금욕을 위한 법적 제재입니다. 도덕적인 요인은 상대방과 지역 사회에서 간통으로 인한 해를 끼치게 된다는데 있으며, 신체적인 이유는 성병이나 혼외 임신을 포함합니다. 또한 정서적인 이유로는 깊은 죄의식, 수치심, 또는 개인적인 가치 부정입니다.

성적인 부정을 막는 데에는 종교적인 견지에서의 좋은 근거도 있습니다. 많은 몰지각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이성적인 전제자로 그저 원하는 대로만 다스리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하나님은 사랑, 친절, 자비, 이해의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성서에서 우리에게 주신 규칙은 최상의 것입니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원하지 않으시며 그는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값을 주고 사신 바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몸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말씀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또한 그렇게 하실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순결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것이 행복을 가져오기에,

(2). 그렇지 않으면 신체, 정신, 정서면에서 해를 끼치게 되므로,

(3). 우리가 부정하면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4). 그래야만 천국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므로,

(5). 우리 몸은 하나님께 속했으며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성적 부정의 가장 큰 비극의 하나는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다는 - 다시는 깨끗케 될 수 없다는 감정입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이 용서의 약속을 이해하게 될지라도, 또 그렇게 했을지라도 자신이 용서받은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적인 부정은 흔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그러한 부정을 경험한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용서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회개하고 - 죄 행위를 중지해야 합니다 - 모든 죄와 마찬가지이며 성적인 죄도 예외는 아닙니다. 만일 그리스도밖에 있으면 죄사함을 위한 세례를 받아 그와 합해야만 합니다.(행 2: 38; 22: 16; 롬 6: 3-4).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사람이라면, 기도로 회개해야 합니다.(행 8: 22)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가 준비하신 진정한 행복을 받으시려고 성적인 습성을 바꿔야할 필요를 깨달으셨으면 - "지금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고(출 20: 14), "음행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 6: 18). 이러한 분명하신 지시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인간들과, 사회와, 모든 것 - 자신 앞에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회개하십시오

어째서 오늘,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당신이 전 생애를 함께 나누며 사랑을 할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만이 오직 안전하고 행복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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