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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문고읽기029] 우정론 -보나르 /이정림

 

<독서일기>

얇은 책인데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에서부터 시작해서, 잠언(箴言)들로 빼곡히 적어 놓은 54 문단들. 눈길을 끌고 있는 부분은 연애와 우정을 비교-대조하는 3장과, 남자와 여자의 우정을 되짚어 보던 5장이다. 사랑과 우정을 견주는 부분에서는 <생각의 거울>의 같은 내용이 떠올랐고, 남자-여자 사이의 우정에 대한 토론은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내용에 솔직한 진실이 아닐까? (무슨 내용인지는 직접 읽어보시라고 안 밝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떨어져 걸음마를 익히고 이웃 꼬마들과 어울리면서부터 이른바 소꿉동무가 생기고, 학교에 들어가면 학우가 생기며, 사회에 나가면 자연히 직장 친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우정은 때로 혈육도 능가한다.  -최용우

 

<책소개>

이 수상록의 저자인 아벨 보나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럴리스트라고 한다. '수상록'이란 말의 정의는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기록해 놓은 책'이며, '모럴리스트'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여 이것을 수필적, 단편적인 글로 쓰는 인생탐구자'를 일컫는다고 한다. 목차는 책의 흐름을 파악하는 골격이 되므로 목차를 살펴보면, 책의 초중반까지는 '우정'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서술되어 있고, 그 이후로는 우정에 관한 짧은 아포리즘(단문 속에 깊은 뜻을 담는 글)들, 연애와 우정의 비교, '이성간의 우정'의 존재여부에 대해 저자와 친구가 나눈 대화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아벨 보나르 (Abel Bonnard) (지은이)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요 모럴리스트로, 중부 프랑스의 포와체에서 태어났다. 저서로는 ≪친한 사람들≫, ≪왕위≫, ≪프랑스와 그 死者≫ 등의 시집이 있고 ≪인생과 연애≫라는 소설도 있으나, 중국여행기인 ≪중국에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으로 그는 프랑스아카데미 문학대상을 받았다. 그 후 스탕달의 ≪연애론≫과 아시지의 성 프란체스코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우정론≫과 그 밖에 몇 가지 인생론을 써 내었다. 1932년에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협력한 탓으로 전쟁 후에 스페인에 망명하여 그 후 소식이 끊겼다.

 

<목차>

1. 우정이란 무엇인가

2. 우정에 관한 38장

3. 연애와 우정

4. 우정에 관한 16장

5. 남자와 여자의 우정

6. 우정의 향연

 

<밑줄 그은 구절>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우정의 대부분은 그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게으름의 결과다. -p.16

 

근대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우정이 성립될 여지가 거의 없다. 오늘의 사회에는 또 하나의 계층이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모두 자기 직무에 몰두하여 완전히 거기에 몸을 바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각자의 직무를 잘 수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그 직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윽고 꿀벌이나 개미처럼 유유낙낙 일이 할당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계층에 걸쳐 다시 노예 제도가 부활하는 것이다. -p.27

 

(남자와 여자의)우정이란 연애가 될 수 없는 감정에 붙여진 이름이네. -p.129

 

남녀 사이의 조용한 우정의 근저에는 무관심함이 있고 떠들썩한 우정의 근저에는 연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30

 

세상 사람들을 보고도 인간이 싫어지지 않는 사람,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줄지 않는 사람, 대중 속에 어떤 위대한 영혼이나 훌륭한 정신이나 매혹적인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고 또 알고 있기 때문에 끈기 있게 그런 사람들을 찾으며 만나기 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우정에 알맞은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p.21

 

……우정은 훌륭한 사회가 아니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즉 우정은 한 사회가 갖는 인간성의 척도가 되며 그 사회의 정점을 꽃으로 장식한다. -p.24

 

보통의 우정 속에도 그 우정을 숭고한 것으로 만드는 효모(酵母)가 언제나 어느 정도는 들어 있는 것이다. -p.43

 

참된 친구는 서로의 감춰진 유사성(類似性)에 의해 가까워지고 평범한 친구는 표면상의 유사성에 의해 가까워진다. 많은 사람들은 하는 일이 같다거나 같은 종류의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심지어 그것을 가장하기만 해도 서로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44

 

친구들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완성된다. 친구는 이를테면 우리가 실행하지 못했던 온갖 활동 분야의 대표자며 대리인이다. -p.45

 

연애는 지키지도 않은 여러 가지 약속을 하지만 우정은 하지 않은 약속까지 실행한다. 거짓말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연애는 적어도 과장을 즐기며 말을 남용한다. 그러나 우정은 언어의 사용에 신중하다. 우정이란 고백되지 않는 정열이다. -p.61

 

위대한 인간이 모든 인간적인 즐거움을 결정적으로 초월하는 것은 연애를 단념할 때가 아니라 우정을 단념할 때다. -p.69

 

고독은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림으로써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도 만들어진다. -p.71

 

우연한 기회가 가짜 연인(戀人)을 만드는 것처럼, 습관은 가짜 친구를 만든다. -p.73

 

우정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성격에 달려 있다. 속물들은 서로 친근해지면 거리낌 없이 무례를 범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참된 친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보다 자기들끼리가 더 예의바르다. 그들은 그 예의 바른 행동을 진심에서 하고 있다는 묘미를 맛본다. -p.76

 

우정이 거짓말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연애는 진실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있다. -p.78

 

우리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앞에 놓고, 그 속에 몇 개 섞여 있는 근사한 메달을 찾아내려는 인간과 같다. 정신은 동전을 하나하나 조사해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감성은 “빨리 서둘러라. 너는 곧 죽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손은 이따금 크게 떨리는 것이다. -p.100

 

친구의 탈을 쓴 사람과 인연을 끊는 것은 유익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나의 성장이다. 정부(情婦)와 손을 끊음으로써 연애에 눈뜨게 되는 것처럼, 그러한 절연은 우정에 눈뜨게 한다. -p.102

 

당신의 우정이 당신의 연애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고독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다. -p.104

 

근면하고 조심스러운 이런 사나이들이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그녀들의 매력을 증명해 주어 자신을 잃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네. 여자들은 이렇게 그들의 염려나 호의나 존경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네. 여자란 남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누군가 그들과는 다른 남자가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세. -p.127

 

확실히 남자와 여자는 친구로서의 기쁨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연애 밖에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다. 세상에는 우정 없는 연애도 상당히 많으며, 증오가 두 사람을 결합시켜 그들의 즐거움에 깊은 맛을 더해 주는 연애도 있다. -p.132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때마다 온몸을 내던져 맹목적으로 자신을 의탁하는 것은 청춘의 무모성이다. 우선 이런 방식으로 생활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역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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