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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혀라. (토저 시리즈22)

저자/역자 : A. W. 토저/이용복  |  출판사 : 규장

발행일 2015-09-21 정가 16000원

 

PART 1 십자가에 못 박혀라, 진짜 삶을 원한다면

 

1 포기할 수 없는 주제,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이란, 완전한 겸손과 순종가운데 온전히 주님께 바쳐진 삶이다. 이것은 주님께 기쁘게 해드리는 희생제사이다. 또한 성경으로 증명이 되는 삶이다. 성경에 의해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지지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기 위해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삶이다. 그분을 더욱 닮고,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행동하고, 그분처럼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이다.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추구하는 것은 마음의 열의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여행이다. 

 

2 예수님은 내게 누구인가

 

오늘날 기독교가 높은 영적 수준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더 깊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으로 들어가라고 권하는 성경의 교훈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럴 용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다른 모든 관계를 희생시켜서라도 그분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예수님은 내게 누구인가? 육신이 되어 사람들 중에서 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으며,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속량을 완성하신 분이 우리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시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통해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3 십자가 이후에 오는 부활

 

여행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추호도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여행의 도착지에서 그리스도와 얼굴을 대하여 마주보게 될 것이다. 어느 여행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이란 여정에도 장애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 만일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한다면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이 여행이 성공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외침은 “그분이 부활하셨다”라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특별한 것이다. 기독교는 특정한 나라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창에 찔려 상처 난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종교이며, 성령으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이며,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새로운 종족이다. 교회는 지구상의 인류 위에 뛰어난 새로운 백성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기에 세상과 달라야 한다. 우리는 저 위에 속한 사람처럼 말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하늘에 속한 티가 난다”라고 말하게 해야 한다. 

 

4 영혼의 외로움을 피하지 말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충만함에 이르는 길은 오직 은혜의 길 밖에 없다. 생각을 통해 그분에게 이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간의 생각은 그분의 수준까지 오를 수 없으며, 사실 그분 근처에도 갈 수 없다. 하지만 그분을 향한 굶주림으로 가득한 사람은 그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결국 그분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외로운 작업이다. 친구가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체험해줄 수 없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이다.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은 나 홀로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은 만세반석 위에 굳건히 선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요 진리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밖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믿어라. 주님은 우리가 허락하는 만큼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원하는 만큼 성령충만해진다. 

 

PART 2 십자가에 못 박혀라, 진정한 힘을 원한다면

 

5 영적 실패자로 마칠 것인가

 

하나님께서 범죄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사건이후 자신의 구원에 대해 말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로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비유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죄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그들을 신령한 삶으로 이끄시기 위함이었다. 바울에 의하면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아 생명을 얻었지만 해가 거듭되어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실패자가 될 수도 있다. 광야에서 떠돌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그분의 보호와 공급을 받았지만 실패자였다. 그들은 그분이 원하는 자리에 있지 못했다. 이들은 영적 실패자로 살다가 영적 실패자로 죽는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천국에 갈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을 간직한 채 그곳에 이르기 원하는가? 즉, 목적 없이 떠돌고 방황하다가 천국에 가기를 원하는가?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 위에 ‘즐거움의 기름’(시45:7;히1:9)을 부어 주시는 곳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더 복된 장소이다. 그곳은 바로 보혈로 산 속죄소이다. 속죄소 옆에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하고 정결한 자기희생적 삶을 사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6 오늘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본질을 회복하길 바라시는데, 우리는 단지 말하는 것에 만족한다. 경배의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에도 만족한다. 하지만 그분은 형식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분은 진정한 경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심과 사랑과 경배를 원하신다. 즉, 하나님 안에 있는 내적 불과 같은 우리의 영적 본질을 원하신다. 내적 불이 꺼지면 외형주의가 발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부어주시면 사람들은 크게 자극을 받고 외형주의를 떨쳐버린다. 예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껍데기뿐인 형식을 극복한다. 진짜를 흉내 낸 인위적인 대형교회보다 살아 있는 작은 교회가 더 낫다. 소박하지만 살아 있는 경건이 화려하고 거창하지만 공허한 의식보다 낫다. 우리는 성경을 만나야 한다. 우리 신앙의 설계도 ‘성경’이라는 청사진에 근거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성경은 광야를 통과하는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사는 사람은 명예와 부와 높은 지위를 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와 동행하기를 원한다. 

 

7 주저앉아 있지 말고 전진하라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살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세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돌이켜야 가능하다. 미심적은 경건은 용납되지 않는다. 예수님이라면 행하지 않으셨을 일을 행하면서 그것을 ‘예수님을 위하여’라는 말로 합리화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살면서 “내 마음은 세상을 버렸지만 내 몸까지 세상을 버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끊어버렸다. 그래서 세상은 그들에게 큰 분노를 느꼈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수님은 세상에 사셨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예수님께 완전히 돌이켜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려면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버리지 않고 따를 수 없다. 

 

8 신뢰는 선택이다

 

신뢰란?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자신에 대한 존경과 확신’ 이다. 자기 신뢰는 십가가에 못 박힌 삶을 가로막는 마지막 방해물이다. 이 방해물에 막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자기 신뢰가 그토록 잘못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께 속한 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았다. 우리는 자신이 좋은 습관과 미덕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장점이 우리의 약점이라는 것을 깨우쳐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네 가지 방법으로 자기 신뢰를 처리하신다. 첫 번째 방법이자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거룩한 감동의 빛을 비추셔서 우리의 자기 신뢰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둘째, 육신적 영역에서 일어난다. 육신적 고통은 모난 우리의 자아를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효과적 방법 중 하나이다. 셋째, 극단적인 시련과 시험이다. 성경의 예수님은 성령충만 후에 광야로 가셔서 엄중한 시험을 받으셨다. 넷째, 우리가 현재 있는 곳에서 성도의 발자취를 보도록 하시는 것이다. 영적 성장의 길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시간표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분을 의지할수록 나의 자기 신뢰는 줄어든다. 

 

PART 3 십자가에 못 박혀라, 거짓 자아를 벗으려면

 

9 값비싼 은혜를 위해 싸우라

 

하나님께서 그분을 따르라고 부르신다면 그것은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따르라는 부름이다. 원수 마귀에게는 온갖 악한 것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해도 끼칠 수 없다. 우리가 늘 던져야 할 질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지불하고 희생하고 포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본 훼퍼는 [제자가 되기 위한 대가]라는 책에서 “우리 교회의 영원한 원수는 ‘값싼 은혜’이다. 지금 우리는 ‘값비싼 은혜’를 위해 싸우고 있다”라고 썼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진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그분의 자녀가 은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분은 우리의 거룩함을 원하신다. 가장 주된 문제는우리가 우리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겉모양을 멋있고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그렇고 그런 신자’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첫째, 안전을 포기하라. 둘째, 편의성의 유혹을 뿌리치라. 셋째, 재미를 희생하라. 넷째, 인기를 내려놓으라. 다섯째, 세상적 성공을 버리라. 

 

10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

 

하나님의 얼굴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이상한 것이 자꾸 끼어들었다. 그 이상한 것을 ‘모호함의 베일’이라고 부른다. 이 베일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눈을 가려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베일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베일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교만과 완고함이다. 완고함은 영적 진보를 가로막는다. 교만이나 완고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고집이다. 교회 안에서의 고집은 아주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고집은 하나님의 뜻을 밀어내고 자기의 뜻을 주장한다. 또한 우리를 가장 잘 속이는 것은 종교적 야심이다. 종교적 야심은 대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다. 또한 소유권 주장이다. 내가 어떤 것을 완전히 포기하여 하나님께 넘겨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분과 나 사이를 가로막게 된다. 무엇이든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 눈을 가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단에 올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미소 짓는 얼굴의 광채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의 아버지는 불신앙이다. 그리고 돈이다. 신자들이 돈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돈을 많이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에 얼마나 많이 사로잡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우정이다. 우정은 찢어버리기 힘든 베일이며, 우리에게 아주 큰 슬픔을 안겨줄 수 있는 베일이다. 또한 사회적 지위이다. 내려놓기에는 너무 힘든 것이다. 베일을 찢어버려라. 겉으로는 아무런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위험스런 것이 될 수 있다. 

 

11 그리스도인들의 이상한 독창성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분에 대해 배워야 하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야 하고, 그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실제로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리자.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한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착각이다. 실제로는 우리의 일을 하면서 하늘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둘째,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산다는 착각이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셋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착각이다. 한편으로는 성령충만을 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인도를 거부하고 우리 뜻대로 일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넷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다섯째, 종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주님의 충성스런 종’으로 소문나는 것을 원한다. 우리가 그분의 일을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런 세속성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는 십자가이다. 

 

12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삶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체험할 수 있는 것 중에는 성령 충만에 의해 우리의 마음이 북돋워지고 믿음의 눈으로 그분을 보며 경탄과 경배에 빠지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조금밖에 알지 못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 대신 물질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시는 분보다 우리가 받는 것, 즉 선물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방해하는 것은 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충만, 경건한 삶, 거룩한 사랑 그리고 온갖 선한 것을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 없이 이런 것들만 갖게 된다면 ‘가시 돋친 장미’를 갖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흔히 범하는 잘못은 하나님을 상자 안에 넣으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충만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분’으로 느끼는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학문의 차원을 넘어 놀라운 인격적 만남의 차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실 때, 비로소 십자가에 못 박힌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PART 4 십자가에 못 박혀라, 샤로운 살아 있음을 경험하려면

 

13 죽음으로 사는 삶

 

새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라고 여겨야 한다. 옛 자아는 절대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이것이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만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둘 중 하나이다. 바울은 옛 자아가 완전히 사라지고 새 자아가 완전히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옛 자아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우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데, 이 ‘살아 있음’은 과거의 ‘살아 있음’과 다르다.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실제로 나타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우리를 지옥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여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닮은 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보는 날까지 우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닮도록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14 포도나무의 가지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살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때때로 얻는 큰 영적 승리라고 믿는다. 이 큰 영적 승리가 역사 속에서 나타난 것이 부흥이다. 부흥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개인의 믿음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교회 전체가 영적 능력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끝으로 지역사회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부흥은 교회의 영적 능력이 넘쳐흘러서 지역사회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개인적 부흥을 추구해야 한다. 혹독한 시련이 닥치면 그때 가서 하나님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라. 시련의 고통에 쫓겨 그분을 찾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겠다고 그분 앞에서 결심하라. 자발적으로 당신의 십자가를 지라. 

 

15 그 길의 끝에서

 

십자가의 못 박힌 삶의 여정을 시작했다면 이 세상은 분명 우리의 고향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너무 편해지면 안 된다. 성경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극도의 어려움과 고난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교회의 역사는 신자들이 겪었던 고난과 투쟁으로 가득하다. 어려움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궤도 이탈’이다. 이것은 영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그들의 여정이 ‘궤도 이탈’의 연속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혹독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고난을 통과하고 나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고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피난처가 있다. 하나님을 높여라. 

 

16 진정한 영적 안내자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의 여정은 험한 길이기 때문에 영적 안내자 없이 가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내자는 그 길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거짓 안내자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 원수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우리의 원수가 즐겨 쓰는 방법은 거짓 안내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영적 안내를 해주겠다는 자에 대해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 중 하나는 그가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참된 안내자는 성경 전체를 받아들이지만 거짓 안내자는 성경의 어떤 구절들을 피해간다. 이것은 진리를 제대로 배운 그리스도인만이 분별할 수 있다. 또한 안내자가 성경 이외의 다른 자료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거짓 안내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기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안내자는 모든 교훈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한다. 그것도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말이다. 참된 안내자 중 대부분은 ‘복음주의적 신비가’이다. 두 발을 성경에 굳게 뿌리박아 다시는 뺄 수 없는 사람이다. 공허한 상상을 곁들인 추측을 말하는 안내자는 필요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영적 안내자만이 필요하다. 

 

-정리: 이재익 목사(일본 니가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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