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꺼리순전한신앙이야기 › 목사가 되기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에 대해

황부일 | 2018.11.11 21:21:0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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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되기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



고은 교회 황부일 목사



<먼저 인간이 되야지라는 실제>

신학교 시절에 여러 교수들로부터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근간에 어느 세미나 강사로 나온 분도 그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수가 그 말을 공감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안 된 자들이 신학하고 목사 되고 목회하니 엉망진창이라는 것입니다.
윤리나 도덕성은 간데없고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고 저질스럽고 추잡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모리배나 협잡꾼처럼 행동하고 부정스럽고 교만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북하면 이런 얘기가 있을까 이해가 됩니다만 주의 종이 되기 전에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세상 사회에서 가르치는 자나 지도자나 어떤 위치에서 앞서 있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르치는 선생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정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은 교육의 원리인 인성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다스리고 이끈다고 하는 정치인들도 필연적으로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나 사회나 나라를 인간다움으로 조성하고 인도해 갈 것입니다.
그밖에도 사회질서를 위해 법을 사용하는 법조인들이나 사람의 건강이나 병이나 육신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나 많은 사람을 아래 두고 있는 경영인이나 모임에 장이나 공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나마 도덕윤리가 설 것이며 양심이나 정의가 그나마 좀 통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지금 이 세상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비인간적인 모습들이 난무합니다. 무엇보다 점점 이기적이고 욕망적입니다. 또한 매우 사납고 완악하고 거짓됩니다.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데 목적과 철학을 둔 교육은 어디 간데없고 전인교육은 책이나 어느 간판에 이름이나 제목으로만 드물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미 어디 한 곳을 고쳐서 될 일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나 흐름이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판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나 주도하며 세력을 구축하고 그런 자들만이 어울리고 누릴 수 있는 경우가 되어 버렸고 그들이 사회를 그렇게 조성하고 물들이고 변화시켜 가면서 다른 보통 사람들까지 그렇게 조성된 그 사회로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만들고 거기에 걸 맞는 인간들로 물들어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세상이 사회가 그렇게 서로 맞물려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것들이 그 사회에 잘 맞는 인간들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보면 실감이 됩니다.
이미 기본적인 가정이 그렇고 가정 문화나 교육이 그렇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고하시고 섭리해 가시는 마지막 때 세상으로의 발전이 역역합니다.



<목사가 되기전에 인간은 어느정도쯤 되어야 하나! >

우리는 지금도 구태의연하게 주의 종이 되기 전에,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적으로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목사가 인간딥지 못했기에
이런 말이 자주 공감적으로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을 일반사회 한 부류의 지도자로 보고 양심적이고 정직한 인간성을 가져야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도대체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기준은 어디까지입니까?
옛날 있었다는 성인이나 도덕군자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적어도 기본양심이나 기본 도리를 가지며 정직하게 지키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이 되어 있다고 봅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인간다운 면모를 갖추었든 아니면 인간답지 못하든 다 성경적으로 볼 때 본질적으로 옛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항상 어릴 때부터 생각과 계획이 악할 수밖에 없는 죄와 허물로 죽어 사탄의 권세 아래 지배 받으며 욕망에 따라 사망의 삶을 살아가는 육체적 존재들인 것입니다(엡 2:1-3).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9-20)고 말씀하심처럼 죄인 된 인간 모두에게는 이런 죄의 본성이 있고 타락한 근성이 있어 언제나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작용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 누구도 이 굴레를 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고 했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롬 3:10-12). 그러니까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는 이상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다워도 죄의 본성을 떠날 수 없습니다.
버림받아 육체가 된 세상 인격체가 모두가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볼 때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이 본질로 볼 때는 진짜 인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점점 가리지 비유처럼 그렇게 되어 가게 되어 있는 것이 성경의 예언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다는 말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안 맞는 말인지 하나님 백성 된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먼저 되고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의 상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나 분명히 말하지만 인간이 먼저 되는 것이 목사가 되는 조건이 아닙니다. 또한 필수 앞선 과정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군이요 복음의 사역자로서 목회자가 되는 데는 어떤 인간적인 기준도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 사도 바울은 증거 하기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이라며 어떻게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볼 때 바울이 복음의 사역자가 된 조건이나 원인은 사람들의 차원에 인간다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 하나님 나라 차원으로 되었음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했으며 훼방자요 포행 자이었습니다(딤전 1:13, 갈 1:13).
인간은 고사하고 악랄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인간된 혹은 그릇된 실제 상태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미 그 전에 그를 사도로 택정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분명히 증거 했습니다(갈 1:15-16).
이 경우는 구약의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1:5).그러니까 인간성을 따지기 훨씬 이전 생명체로 생기기전부터 하나님은 말씀의 종 된 자로 이미 계획하시고 쓰시는 그릇으로 지으셔서 그분의 경륜을 따라 적당한 시기에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점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16).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 신분과 됨됨이 상태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계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낮고 천한 자들이요 무지하고 단순하고 인격적으로 볼 것 같으면 수준이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제자로 부름 받고 따라 다니면서 보여준 말이나 많은 행동들이 복음서를 통해 증거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어느 정도 되었거나 아니면 덜된 미흡한 자들을 불러서 인간으로 만드실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혀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잘났던 못났던 그런 세상 차원의 인간 냄새는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향기 된, 또는 사신된 자로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와 그 형벌의 삶을 사는 진노의 옛사람이었던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피조물로 그가 만드셔서 그 나라 된 모습으로 자라게 하시고 그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세상 인격을 갖춘 인간됨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모습으로 온전해지게 하시는 차원입니다.
하나님은 죄아래 있는 세상사람 된 인격체를 목적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합한 그리스도의 형상 된 그리스도의 인격을 목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롬 8:29).

오늘날 대다수의 공감대처럼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면 그는 인간 목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인간이 되는 것이 우선이고 목사가 되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목회를 인본주의로 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도덕윤리를 강조할 것이며 사람에게 인간됨으로 인정받는 것을 크게 여길 것입니다. 결국 옛사람 된 범주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세상차원에서의 전인적인 이상을 기독교의 교육 목표나 거룩한 모습이나 구원처럼 설교할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유명하고 훌륭한 목사님들 가운데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윤리적 설교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인 것입니다. 이들은 이방 종교지도자들 같은 차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론 일반 사회나 국가가 인정하는 훌륭한 인물로 높임도 받고 상도 받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의 교인들에게 사회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합니다.

이제 다시 정리를 해볼 것 같으면 실제로 인간이 먼저 되지 않은 자들이 목사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교계가 어지럽고 타락한 모습이 보이고 사회에 지탄받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종 된 자로 부름 받고 그에게 사로잡히지 않은 거짓된 자들이나 삯군들이나 자기의 의지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목사가 된 자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들은 잘났던 못났던 인간다움이 있든 없든 모두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지 않기 때문에 잘난 자는 잘난 대로 자기 이상적 욕망 중심이고 못난 자는 못난 대로 본능적 욕망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시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 이름으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사람에 맞추어 다른 복음을 전해주는 자들을 가리켜 거짓된 자나 삯군이나 잘못된 목자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인간성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나 한 가지 이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는 은혜는 입지 못합니다.

예레미야의 증거로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안만 외치고 사람들을 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며 열심히 헛된 것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며 몽사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들로부터 사악이 나와 온 유대에 퍼진다고 했고 간음과 가증한 일을 일삼는다고 말씀했습니다(렘 23:14-28참조).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복음의 사역자로 삼으신 자만이 그분에게 사로잡혀 중생케 되고 점점 옛사람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라가며 하나님 나라 된 모습과 삶을 한두 발 앞서 살아가는 자로 되는 것이며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런 자만이 과거나 현재 상태에서 인간성의 그 어떤 상태 여부와 상관없이 복음을 통해 자신과 가르침을 받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사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게 되며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 된 모습과 삶을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롬 10:15). 때문에 보내심을 받지 않은 자들은 누구도 자신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울 수가 없으며 그 어떤 인간적인 모습과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로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고전 15:10). 분명 그는 먼저 인간이 되었거나 아니면 나중이라도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어둠의 인간 상태에서 빛 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모습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내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은 자들이 주의 종이라며 목사가 되어 있는 자들이 너무도 많은 것입니다.
이들의 분명한 모습은 이들이 인간이 된 자로 인정을 받든지 못 받든지 옛사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는 자신과 남을 구원에 이르게 역사하는 순전한 복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유케 하는 진리와 거리가 먼 소경 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인한 선한 싸움이 없습니다. 때문에 묵시(말씀)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말씀처럼(잠 29:18) 이런 목사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 멋대로 교회 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며 어떤 자는 고상한듯하나 인본주의로 기독교 이상주의 실현을 꿈꾸기도 하고 또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멋대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휘두르며 공갈 협박하는 교주 노릇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로 이들 때문에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 같은데 그러나 이것이 어디까지 인지 기준은 모르나 인간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의 도구 된 목사는 될 수 없으며 또한 아무리 인간이 안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종 된 자로 안 부르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 기준에서 인간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이 세상 교육과 자기 도야에 의한 윤리적 기준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선한 일군이 되고 또한 그 선한 일군답게 거룩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 주권과 그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가 가까올수록 거짓된 목사와 삯군 된 목사들은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목사가 먼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복음으로 교회 구원을 이루어가는 하나님 나라에 합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목사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백성 다워지는 성경의 원리>

바울의 증거를 보면,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0~13)
야곱은 분명 양심도 없는 간교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중 고백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언약하신대로 믿음의 조상답게 양육해주셨다고 했습니다.

"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이라고 요셉에게
증거했습니다.
디도서2:11~12절에도 말씀합니다.
"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말입니다.
욥의고백에도 그러힘이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로마서8:29~30절읗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바로 이말씀속에 교회된 성도의 거룩하고 온전한 모습과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할 사역자들의 기르스도의 증인될 모습이 약속되어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모두는 믿음과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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