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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然 | 2004.07.01 09:16:2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출처
http://www.deulsoritimes.co.kr 2004.4.7

예수의 오늘을 산다  

어떤 신자들은 예수님이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신다고 믿고 있다. 이는 영광 중 승천하심을 알고 있으며, 또 스데반이 돌무더기에서 죽어가면서 주(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5∼56)한 간증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대체로 믿는 것 같다.
사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처지가 지금 그렇게 한가하실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하면 보좌 우편의 신분이 분명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이 세상에 오셔서 쓸만한 신자들 곁에서 그들이 믿음의 승리를 해내는 것을 지켜 보시면서 함께 수고 하시지 않겠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은 한가하시지 않다.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사시고 승천, 성령으로 (다시) 오고, 오셔서 성령은 나사렛 마리아의 기적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이제는 교회를 어머니로 하여 낳으시고, 그 자녀를 길러 하늘의 백성으로 삼고 계신다.
그러나 지상에 교회의 이름들, 또는 신자의 이름들에 이상이 생겼다. 역사 위에 등장한 세계 기독교는 각 민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자녀들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성숙한 모습으로 길러 가히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구나 하는 감탄과 찬사를 받는 자들로 세워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빛내 주어야 할 ‘부활신앙’에 이상이 생겨 하나님의 섭리(경영)에 차질을 빚게 하고 있다.
예수의 복음에 의하면 모든 믿는 자들이 마치 ‘예수의 오늘’을 살아가는 고백을 해야 하거늘 신자들이라 하면서 당시 골고다의 관객들처럼, 또 요즘 극장가에서 상영하는 ‘pass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고난’ 영화를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예수를 바라보면서 울고 웃는 수준이니 예수의 탄식이 얼마나 크시고, 그 불편한 심사가 크시지 않겠는가.
성경을 보라. 성령 강림후 제자들은 예수처럼 살았다. 특히 바울 같은 이는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하는 고백을 통하여 그는 예수의 현재를 매우 구체적으로 살았던 사도이다.
또 요한은 어떤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요11:24∼25)하여 그의 현재 신앙이 부활의 터 위에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기독교가 열매를 얻으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현재를 자기 몸에서,그 몸들이 모여서 이룬 교회에서 발견해야 한다. 성도가 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를 온 몸으로 증거하지 못하면 그들은 실패한 기독교이다.
오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 부활을 매우 공허한 목소리로 외치면서 그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예수를 부르다가 지쳐서 다시 또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 가고 있다.
어느 때까지인가. 기독교는 어느때까지 십자가에서 십자가를 만나며, 죽음에서 죽음을, 부활에서 생명을 만나는 구체적인 신앙으로 예수의 인생을 자기 삶에서 맛 볼 수 있을까.
나의 인생, 나의 신앙, 예수께서 감격하시며 열광하시던 고난과 죽음, 부활과 성령강림과 함께 이루시는 교회의 신비를 주신 뜻을 나는 오늘 깨달아 달걀 속에서 병아리 나오듯이 그렇게 다시 태어나 예수 이름으로 살아 주기를 바란다.〈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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