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공방만가지생각 › [3911-3920] 여관에서, 떡을 떼자, 눈이 밝아져, 눈이 어두우면, 따뜻한 밥상...

최용우 | 2024.01.01 21:19:0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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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한장 칼럼]

 

3911.여관에서

엠마오로 돌아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은 날이 저물어 여관에 묵게 됩니다.(눅24:28-29) 날이 저물어가자 두 제자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예수께 하룻밤 묵어가자고 말합니다. 예수께 친근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상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함께 지내면서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3912.떡을 떼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밥을 먹을 때 예수님이 떡을 축사하시고 떼는 순간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눅24:30-31) 예수께서 ‘떡’을 들고 축하하신 장면은 두 가지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오병이어’사건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입니다. 제자들은 그제서야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이분이 그분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3913.눈이 밝아져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보는 순간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눅24:30) 눈이 밝아졌다는 말은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유레카’나 ‘돈오(頓悟)’같은 것입니다. 기독교 용어로는 ‘견성’이라 합니다. 거듭남, 신성(新性) 이라고도 합니다.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면 예수님은 없습니다.

 

3914.눈이 어두우면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은 방향을 바꾸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전합니다.(눅24:33-35)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깨달음과 믿음이 없으면 바로 앞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영적 시각장애인입니다. 필요한 일은 일단 시력을 회복하는 것, 들을 귀를 여는 것입니다. 

 

3915.따뜻한 밥상

서울 어느 교회 목사님이 매일 아침을 ‘제육볶음 백반’을 3000원에 제공하는 식당 이름이 ‘따뜻한 밥상’입니다. 그렇게 한 그릇 팔면 100원 남는다고 합니다. 한끼 밥값이 1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세상에서 3000원짜리 따뜻한 밥상이라니... 그 밥상은 ‘기름진 밥상’이 아니라 ‘거룩한 밥상’입니다. (최근 식당 이름이 ‘삶천식당’으로 바뀌었다.)

 

3916.그 사람 환영

어느 식당에 갔더니 ‘그 사람 환영’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여 가져갈 때 ‘1회용 용기’ 대신에 음식을 담아갈 그릇을 가져가서 담아가는 사람을 ‘그(릇을 가져온)사람’이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이런 작은 행동도 이 가공할만한 소비 사회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며 작은 순교가 아닐까요? 저도 ‘그 사람’중에 한명입니다.

 

3917.주인에게 순종하라

베드로는 ‘노예’인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벧전2:18-20) 로마 황제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대 상황에서 노예 신분인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대들은 ‘두 세상(Zweireichlghgr)’을 살아가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3918.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벧전2:21)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를 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알라는(믿으라는)말씀입니다. 아무리 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으면 그것을 붙잡고 살지만, 희망이 없으면 견디기 힘든 것처럼 예수님을 희망으로 붙잡고 살라는 말입니다. 

 

3919.예수님의 순종

예수님은 죄가 없었지만 대적자들에게 맞대응하지 않고 고난을 온전히 침묵으로 받으셨습니다.(벧전2:22-23)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당신의 사명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만큼 그가 가야 할 길은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결코 쉽지않은 길이었던 것입니다.

 

3920.공의의 심판

예수님은 악한 자들을 복수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손에 모두 맡기십니다.(벧전2:23)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깁니다. 사람의 판결은 항상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사람은 공의롭지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의롭게 판결된 사람들입니다. ⓒ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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