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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2008.02.19 17:26:0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에 가고 싶다. 큰댁 뒷동산에 있던 용틀임하던 소나무는
죽은 지 오래다. 내가 자라던 집은 흔적조차 없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개울에는 물도 말라버렸다. 거기서 빨래하던 아낙들은 어쩌면 이제는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을 듯하다. 그런데 가고 싶다. 그래, 고향에 가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하리라. 나는 나를 토닥거리고 싶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피곤한 마음도 상처난 몸도 쉬게 하고 아프지 않게 하리라.
- 정진홍의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중에서 -

* 고향!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뒷동산 소나무도 죽었고 느티나무 아래 개울물도 말랐지만 고향은 아직도 우리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풍성한 그늘로 안아주던 동구밖 느티나무는 우리 마음의 고향 속에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상처난 마음도, 지친 몸도 쉬게 해주던 내 고향의 따뜻한 품이 그립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소판돈 훔친 소년, 소 몰고 금의환향.

98년도 최대의 스포트 라이트는 역시 소 1000마리를 이끌고 북한 땅에 있는 고향을 찾아갔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야기었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의 한 농부의 8남매중 맞이로 태어난 그는 가난이 싫다며 18세 되던 해 아버지의 소 판 돈 70원을 훔쳐 서울로 달려와, 노동판과 쌀가게 점원을 전전하던 끝에 이제는 세계적인 거부가 되어 훔친 소의 1000배를 가지고 고향 땅을 밟게 된 것. 분단 반세기만에 최초로 판문점을 통한 방북의 길을 텄고 우리 국민들에게 대망에 금강산 관광의 꿈을 실행시킨 올해 82세의 노 기업가, 방북에 앞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도 뒤도 안보고 그저 죽자고 일을 했더니 쌀가게 주인이 되었고, 또 정신없이 일만 했더니 건설회사도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평생을 살다 보니까 오늘에 이르렀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고향산천을 찾아간다."
우리도 이렇게 앞도 뒤도 안보고 주님 모습만 바라보고 살면 금강산보다 더 좋은 천국 본향에 금의환향할 것이다.

▣ 고향 가는 길

고향가는 길에 따른 몇 가지 영적인 의미
△ 고향에 가듯 인간은 영원한 세계로의 회귀가 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
△ 아무리 길이 막혀도 고향가는 길이 즐거운 것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길은 힘들어도 즐겁다
△ 고향의 부모를 만나듯 후에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 고향에 가면 안식과 평화가 있듯 천국에는 영원한 복락이 있다. 이런 사람은 또 마음의 천국이 있다
△ 믿음을 가 진 사람은 귀성차표를 마련한 것과 같다

▣ 연어의 회귀본능

우리는 연어의 회귀본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연어는 원래 민물에서 태너나 자랍니다. 그러나 얼마쯤 자란 다음에는 반드시 바다로 내려가 삽니다. 바다에서 짜디짠 물을 먹고 그들의 뼈가 자라고 살이 자랍니다. 그들은 넓고 깊은 바다를 마음껏 휘저으며 삽니다. 3-4년을 이렇게 살고 나면 산란할 때가 되어 반드시 본능적으로 자기의 본향인 민물가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영너 떼들은 강기슭으로 향합니다. 원래 나이가라 폭포에선 연어가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짓굿은 어류학자가 미시시피 강으로 산란하러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다가 나이애가라 폭포 위쪽에 산란하도록 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연어 치어가 태었고 그 치어들은 대서양으로 가서 자랐습니다. 어류학자의 관심은 대서양으로 간 그 연어 치어들이 과연 나이애가라 폭포쪽으로 올라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연어의 회귀본능이 얼마만큼인가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몇 년 후 그 연어들은 산란의 때가 되자 어김없이 나이애가라 폭포 밑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폭포위로 저프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세차고 거대한 폭포, 연어는 그 폭포의 똗아지는 물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점프에 실패해 주둥이가 깨지고 아가마미가 터져 피가 철철나지만 연어느 svhrl하지 않았습니다. 피로물든 몸으로 사생결단해 마치매 연어는 나이개가라 폭포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곳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회귀본능 본향인 천국 하늘에 향한 향수심입니다.
/국민일보 중에서

▣ 더 나은 본향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특별해 옛날부터 군에서 전령으로 활용하였다. 한번은 영국의 부호가 카나리아를 한 마리 사서 발목에 금가락지도 끼워주고 머리에 꽃관도 씌워 주면서 18년동안 애지중지 키웠다. 어느날 집에 불이 나서 새장의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새장 문이 열려 카나리아가 날아가버렸다. 부호는 매우 슬퍼하면서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사람을 풀고 사방에 수소문하였다. 그 후 2개월이 지나서 카나리아를 아프리카 키네아 지방에서 발견하여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카나리아는 고향을 찾아 4800㎞를 날아간 것이다.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고향을 찾아갔을까? 그것은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부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카나리아를 완전히 해방시켜 고향으로 날려보냈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성결교회)

▣ 귀소본능

동물들의 귀소본능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하다. 예를 들면 개는 아무리 먼길을 가서도 한번 간 길이면 반드시 그 집을 다시 찾아 돌아온다. 이는 개가 길을 걸을 때에 독특한 냄새를 끼치면서 가는데 취각이 강한고로 자기가 걸어온 길의 냄새를 맡고 길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비둘기들은 몇 백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곧장 자기 고향을 향해 날아가고 연어나 숭어는 산란을 위해 출생한 강으로 돌아간다. 또한 일벌이 아주 미지의 땅에 옮겨졌을 때에도 정위치로 날기만 하면 매우 먼 장소에 방치되어도 돌아올 수 있다. 이와같이 동물들이 일정한 주기, 육아의 장소 등을 가질 때에는 거기에서 먼 곳에 가더라도 다시 되돌아 오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 개미의 귀소심리

동물학자 E.마레이즈는 아프리카 개미를 둔 흥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개미집 둘레에다 둥그렇게 홈을 파 물을 대놓음으로써 개미집과 외부를 차단시켰습니다. 물론 개미집에는 개미가 들어있었고 그 일부는 먹이를 찾으러 밖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마레이즈는 그 차단한 홈의 한 군데에 가느다란 짚으로 외다리를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서 관찰을 한 것입니다. 집에 있던 개미는 밖에 나가기 위해 외다리를 건널 생각을 않고 예외 없이 되돌아가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외다리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밖에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먹이를 마련해 갖고 돌아온 밖의 개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찾아 들었던 것입니다. 나가는 개미에게는 찾아볼 수 없던 용기와 모험을, 들어오는 개미는 서슴없이 부렸던 것입니다. 마레이즈는 이 실험 결과를 예시하고 동물이 집에 돌아오는 귀소심리의 크기를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려는 개미의 용기와 모험심을 가져야 할 자들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러 가는자들의 자세입니다. 주님을 만나려고 본향 집에 가려는 자는 개미의 귀소본능에서 오는 용감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환경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개미와 같은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고신복 목사

▣ 돌아갈 고향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고 아내조차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 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그런데 그 사람처럼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였습니다. 1980년 4월 16일, 그는 입원한 지 한 달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비그리스도인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 기독신문사 출판기획부
* 기도: 이 세상에 살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집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축복으로 풍요와 안락한 삶을 누리지만 주님계신 본향을 사모하며 사나 죽으나 주님의 기쁨으로 살게 하소서.

▣ 영원한 본향

며칠 전에 북한주민 세 가족 21명이 20t급 목선을 타고 탈북,남한으로 직접 귀순해 화제가 되었다. 요사이 들어 북한주민의 생활이 어려워 대한민국으로 귀순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번 탈북사건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인원이 대규모인 데다 정치색이 없는 평범한 가족들이 힘을 모아 10년 전부터 준비하여 탈출했다고 한다. 더구나 70세 된 할아버지에서부터 어린아이까지 손을 잡고 사선을 넘은 그들의 결연한 모습 속에서 진한 혈육의 정과 생명의 소중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또한 이들이 탈출한 동기는 더욱 우리에게 인생살이의 근본을 생각하게 했다. 최고 연장자인 70세의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생활고 때문에 남한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자기의 남은 마지막 삶을 고향에서 마치고 싶어서라고 했다. 본향을 사모해서 남한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 만물이 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회귀의 본성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이 세상의 삶을 소풍으로 비유했으며 그 소풍이 끝나는 날 본향으로 돌아갈 것을 노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고향을 잃고 사는 실향민처럼 안타까운 삶은 없을 것이다. 명절 때가 되어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하루속히 통일되어 자기 고향을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야 되겠다. 그러나 영적으로 본다면 본향을 찾아야 할 사람들이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영구히 돌아가야 할 곳은 이 땅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살지만 실제 이 세상 속에는 진정한 본향은 없다.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고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조상도 자기의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는 장막을 치고 살았다고 한다. 이것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다(히 11:10).
진정한 전도, 영혼 구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본향을 찾은 자가 주님이 십자가로 이루어 놓은 길,인간의 영원한 본향 길을 이 세상 속에 빠져 이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원한 본향을 발견하고 그 본향을 전하는 전도자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례자일 것이다.
/민경설(광진교회 담임)

▣ 본향을 찾는 자

성경: 히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 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 하셨느니라"

고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고향이라는 말만 앞에 붙이면 갑자기 새로운 감동이 마음에 느껴옵니다. 고향 친구, 고향 음식, 고향 역, 고향 집, 고향 풍경 등 고향에 있는 것이면 아름답게만 느끼고 있는 우리의 마음들입니다. 고향은 우리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우리의 꿈이 있는 곳이며 우리에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부채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명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에 다니러 갈 것입니다. 고향에 오는 사람,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모습만 보아도 벌써 알 수가 있습니다. 고향에 가는 사람은 단순히 몸만 가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서 이룬 모든 성공을 그 어깨에 매고 고향을 찾게 됩니다. 명절은 성공의 경연장 같고 성공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명절은 고향을 떠나 살았던 과거를 안고 고향에 모이는 절기입니다. 어렵게 떠났던 고향길을 개선장군처럼 들어서는 사람에게서 인생의 행복을 보게 되고 반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실패의 부담을 안고 무겁게 고향집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삶이 바로 전쟁이 되어 버린 치열한 현실에서 고향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휴식처요 삶 속에 있는 평화지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향을 노래해 왔고 고향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고향의 노래가 사람들에게 많이 불리워 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고향의 이야기를 다룬 글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우리들은 본향이 있습니다. 본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오늘도 천국 본향을 사모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인생의 고향 어머니

신앙인의 고향은 교회입니다. 이민생활자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향은 고국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고향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어른이 되고 늙어도 어머니는 여전히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군에 간 아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 어머니입니다. 아플 때나 외로울 때 가장 그리운 사람도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고향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희생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늙어가면서 더 윤기가 나고 중후함이 풍기고 고상해집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누님같이 보입니다.
열남매를 낳아 기른 어머니의 젖은 속이 텅 비어 쭈글쭈글해집니다. 속 알맹이를 모두 자식에게 먹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아주 고상한 우상입니다. 새삼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고향의 감나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감나무에 가는 눈길이 새삼스럽다. 무언가 정감이 가며 그와 함께 가을이 깊어가는 정취를 실감한다.감나무가 없는 시골집은 메말라 보인다. 감나무는 고향 냄새를 간직한다. 내 고향 강릉에도 감나무가 많았다. 떫은 감을 따서 껍질을 벗긴 다음 시원하고 그늘진 곳에 매달아 곶감을 만들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 윤후명의 《꽃》중에서 -
* 정말, 눈에 선합니다. 우리가 그 어드메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고향 감나무는 오래된 친구처럼 아련한 고향의 추억, 고향의 상징입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이 아침 고향 감나무 한 그루를 제 마음 깊은 곳에 심어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고향을 찾는 사람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어머님이 계신 곳이 고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포근한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기를 쓰고 고향을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고 싶어도 고향에 못가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쓸쓸해 하는가 보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성공하면 고향을 찾는다고 해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을 썼다. 3일이나 되는 연휴라 이번 추석의 귀성 길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예상이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 못지않은 즐거운 명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하는 고향이 또 하나 있다. 명절이 되면 찾고, 볼일이 있어서 찾는 그런 고향이 아니다. 우리들이 돌아갈 영원한 나라이다. 영존하시는 아버지께서 계신 나라요, 먼저 가신 성도들이 계신 곳이다.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가게 될 영원한 나라이다. 세상에서도 금의환향이 그렇게 부럽고 바라는 소망인 것처럼 영원한 고향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주님도 비유와 교훈들을 통하여 결산하는 그날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남기는 달란트로 칭찬받게 될 것인가? 아니면 묻어둔 달란트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게 될 것인가? 이번 추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게 될 것이다. 자랑스럽게 부모님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은연중에 비교하려고 한다. 서로가 부끄럽지 않는, 그리고 자랑스러운 귀향길이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들의 관습으로는 명절과 고향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혹 부끄럽고 부족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도리를 내세우며 며칠간만 참으면 된다. 그리고 더욱 분발하리라는 다짐으로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돌아설 수 없는 고향이 있다. 그토록 사모하는 하늘나라 내 고향 말이다. 진정한 중추절 귀향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게 하자.
/손윤탁 목사

▣ 어느 날

어느 날 우리는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인생 모두가 꿈처럼 보일 것이다. 자신의 침대로 돌아온 도로시에게 오즈의 모든 모험이 꿈처럼 느껴진 것처럼.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잠에서 깨어날 때 도로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엇이었던가
“집 같은 곳은 없어요……집 같은 곳은 없어요.”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 중에서-

지금 우리의 육체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 우리의 본향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실 때 조금 더 있다 가겠노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세상이 말하는 넓은 길을 따라 걷기보다 본향을 향해 가는 좁은 길을 따라 가십시오. 조금 더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이야말로 본향으로 돌아가는 생명길이요 결국 승리를 외칠 영광의 자리입니다.

▣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그네 옆에 있던 커다란 은행나무는 사라져 버렸고, 학교 앞으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선생님이 잠시 말을 멈추곤 했었는데 지금은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어서 소리가 잘 안 들렸습니다. 아, 내가 자주 다녔던 만화방도 그대로 있고 신신문구점도 그대로 있네. 어머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갈치조림을 해 주셨습니다. 고향에 가니 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이 편하고 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원래 고향은 천국입니다.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해집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잠시 천국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천국이 고향인 사람들이 모여 다시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곳이지요. 만약, 어떤 교회에서 천국을 맛볼 수 없다면, 그 교회는 최우선적으로 천국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최용우

▣ 참 고향을 심는 교회

교회당을 지으려는 목회자가 건축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건축계획서에는 건축가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니,교회에 고급 콘도를 2채나 마련하라고요? 목사님과 사찰의 거처인가?” 건축가의 질문에 목회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말은 정말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목사나 사찰이 교회당에서 사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 콘도는 매주 두 교우 가정이 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우들에게 직접 교회당도 관리해보게 하고 교회를 따뜻한 집으로 삼게 해보려는 뜻이지요. 더욱이 우리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교회를 그리운 고향으로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명절이 되면 교회당을 찾게 하고 또 교회를 통하여 참 고향인 하나님 나라의 품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심는 것이 교회의 가장 소중한 사역입니다.

▣ 나의 본향

몇 년 전신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위스콘신 주 그린 베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푸치’라는 이름의 앵무새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고를 당한 그 새는 야생동물협회의 보호로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다. 그 후 아무도 그 새를 찾는 사람이 없자, 그린 베이에 사는 ‘수 글리슨’이라는 여성이 그 새를 기르겠다고 자청했다. 그녀는 푸치를 엄청나게 사랑했다. 그들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작은 새가 그녀의 어깨 위로 날아오더니 부리를 그녀의 귓가에 대고 “그린 베이 오네이다 거리 남쪽 1500번지”라고 속삭였다. 글리슨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즉시 그 주소를 확인하여 그곳에 79세의 존 스트루반츠라는 노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선생님, 혹시 댁에 앵무새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은 대답했다. “전에는 있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잃어버렸습니다.” 글리슨이 말했다. “제가 지금 즉시 그리로 가겠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앵무새를 보자 너무도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정도니, 푸치는 정말로 비상한 앵무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 길에서 만나는 그 중간 기착지들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최종 기착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마음속에 최종 주소지를 확고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깊은 은혜 속으로」/ 캘빈 밀러

▣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삶

어떤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일찍이 홀로 되셔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키셨습니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나름대로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 사는데도 할머니는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작은 오두막집에 혼자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녀들은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 이제 우리들도 모두 잘 사니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며 살 수 있어요.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서 혼자 살지 마시고 저희랑 좋은 집에서 사세요”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애원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지어다오. 집 바닥은 온통 유리로 하되 기둥은 12개로 하고 그 기둥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라. 보석은 각기 다른 색깔로 하고 문은 12개가 되어야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어머니, 농담이시죠.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을 어떻게 짓나요?”라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대한 어머니의 말은 더 걸작이었습니다.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왜 없냐? 나는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분양 받았는데…. 그래서 곧 그곳에 살게 될 테니 나보고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살자고 하지 말려무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며 사십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본향을 바라보며, 그곳을 향해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삶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 1).

▣ 또 하나의 고향

중국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유방이 항우의 10만 군사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유방은 가을 달밤에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퉁소로 구슬픈 초나라의 가락을 불게 하였습니다.그러자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향수병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퉁소 가락으로 유방은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고향이란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인 추석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깊은 향수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아늑한 품과 같고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동심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막상 고향을 찾으면 허무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고향을 가보아도 내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이유는 우리에게 또 다른 고향,영원한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요,돌아갈 나라입니다.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 내가 마중을 나가주마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한 선교사가 여러해 동안 수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되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소리와 함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올 때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고독하게 내려왔습니다.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하는 생각으로, 고독감과 실패감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으로 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 3:14)

▣ "네 고향 땅에 묻히고 싶구나”

2004년장애인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육상 4개 종목에 출전한 김정호 씨. 소아마비 증세를 보였던 그는 1982년, 모 복지재단 소개로 등뼈 수술차 미국 하와이 병원에 보내졌다. 거기서 의사로 재직하고 있던 신니 하일베어 씨는, 당시 열두 살이었던 그를 계속 치료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입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아마비 아들을 돌볼 능력이 없었던 그의 친부모는 하일베어 씨에게 입양을 허락해 주었다. 2년 뒤, 하일베어 씨 부부는 양아들을 데리고 그의 친부모가 살고 있는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의 정겨운 풍경과 인생을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네들의 모습에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 후에도 제주를 한 차례 더 방문하며 양아들의 가족들과 친분을 쌓았다. 하일베어 씨는 양아들 김정호 씨가 성장해서 독립할 무렵, 자신이 숨을 거두거든 제주 땅에 묻어 줄 것을 요청했고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2년 전에 숨을 거둔 하일베어 씨의 유골은 지난 5월, 그의 유언대로 북제주군 조천읍에 있는 김씨 집안 선산에 묻혔다. 김씨의 친아버지 산소와 나란히 말이다.
“정호가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 미국 대표선수로 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기뻐했으며, 특히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라고 김씨의 큰형은 전했다. 소아마비 소년을 입양해서 치료해 주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훌륭하게 키워 낸 하일베어 씨. 그가 남긴 사랑의 온기는 제주 땅 전체를 덮고도 남을 것이다.

▣ 영원한 것

나는 중국에서 평생을 선교사로 보낸 노인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늘 건강을 유지해 매우 강건했다. 그런 분이 암에 걸려 온몸에 암 세포가 전이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위로하러 갔다가 도리어 큰 위로를 받았다. 그분은 좀처럼 보기 드문 기쁨과 광채를 지닌 채 침상에서 일어나 내 차가 주차해 있던 곳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면서 환한 미소를 짓고 두 손을 흔들면서 “빌리,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게.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리스도가 좋은 분임을 더욱 느끼게 되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비결은 ‘그리스도’이다. 또 한 친구가 런던의 거리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환한 미소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연주하던 그에게 친구는 스코틀랜드가 고향이냐고 묻자, 그는 “아뇨, 나의 고향은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선 나그네일 뿐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늘 천국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가장 힘들 때에도 고요하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우리가 세상에 연연해 영원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면 기쁨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만일 천국의 영광을 실제로 느낄 수 있어 영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위해 산다면, 우리 마음은 세상의 삶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소망, 상한 마음을 위하여」/ 빌리 그래함

▣ 어머니 가슴속에 묻은 그리움

평생을 북녘 하늘을 우러르며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아홉 살 되던 해, 무서운 친할머니의 길벗이 되어주기 위해 남한으로 건너오셨다. 신기한 것도 많고 새로운 것도 많았던 제주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서울까지 왔는데, 아뿔싸, 북으로 가는 기차는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3일 전에 북으로 가는 모든 길이 끊겼다는 기막힌 소식에 기약도, 희망도 없는 고향길을 뒤로 하고 다시 제주 섬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살다가 섬처녀로 살아가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이 다 호랑이 할머니라 부르는 할머니와 외로운 섬생활이 시작되고 가슴속에 쌓이는 그리움은 할머니가 무서워서 제대로 표현도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묻어두기만 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땐, 김을 매다가도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멍하니 북쪽 하늘을 바라보곤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그리움이 어떤 것일까 가슴 저리곤 했다. 이제 자식들은 다 커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어쩌다 찾아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번 “그달 중순쯤 갈게요” 해놓고 사정이 생겨 그달 말에야 집에 가게 되었다. 날마다 전화통을 바라보며 기다리다 지쳐서 동생에게 괜히 화를 내셨다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나를 맞으면서 보인 반응은 더할 수 없는 반가움이었다. 왜 전화 한 통도 안했느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등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속 끓이고 애태우며 서운했던 모든 감정을 딸에 대한 반가움 속에 묻어버리는 어머니의 그 오랜 그리움이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홍미옥, 전남 광양시 중동

▣ 두 노인의 아름다운 은퇴

2005년 언론의 작은 부분을 차지했던 흐뭇한 두 노인의 이야기 입니다. 이 두 노인은 전남의 고흥군 소록도에서 40년이 넘도록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마리안 수녀(71세)와 마가레트 수녀(70세)입니다. 2005년 11월 21일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두 수녀는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이 두 노인이 남긴 편지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겠다.” 라고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수녀들은 고향인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꼭꼭 숨었습니다. 두 수녀는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쪽빛 물결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20대 후반부터 40년이 넘게 산 소록도는 그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두 노인의 아름다운 은퇴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고향, 본향에 관련한 성경 말씀

0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창11:28)
0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24:4)
0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창30: 25)
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민10:30)
0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 지요(시84:10)
0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잠27:8)
0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마13: 54)
0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막6:1)
0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눅2:3)
0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요4:44)
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14: 1∼2)
0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행7:3)
0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 1).
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빌 3:20)
0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0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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