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14호 |
2010년2월11일에 띄우는
삼천칠백열네번째 쪽지! ◁이전 l 다음▷
l지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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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추천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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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문이 있습니다
조금 늦게 은행에 갔습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삐꺽삐꺽 돌돌돌 드르르르르 철컥! 청원경찰이 은행의
셔터문을 내리더니 고리에 자물쇠를 채워버리네요.
아이고 이걸 어째... 아직 은행 안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제법 많은데, 큰일났습니다. 우리들을
은행 안에 가두어 놓고 무슨 일을 벌일 작정인가
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셔터를 내리든
말든 아무 관심도 없네요. 뭐야! 나만 빼놓고 다를
한 패거리들인가? 잠시 후에 은행 일을 마친 사람들은
화장실이 있는 통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밖으로 나가는 뒷문이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은행 마감시간이 넘었군요)
여러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은행
문이 닫혀도 뒷문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해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반드시 빠져나갈 문이 있습니다. 힘내세요.
ⓒ최용우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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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1332 <오늘하루/삼인>중에서○지난글 |
□
눈이 아니라 배로 살기 |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노자
도덕경
눈을 위하지 않고 배를 위한다? 무슨 말인가? 어렵게
궁리할 것 없습니다. '눈'은 나와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감각(feeling)의 대명사입니다. 눈이 있어서 바깥세상과
나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는 거예요. '배'는 내 안에
있으면서 나를 있게 하는 나의 중심(heart)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눈을 위하지 않고 배를 위한다"는
말은 "감각에 따라 살지 않고 중심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노자의 이 말을 기독교식으로 바꾸면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산다"가 되겠지요.
ⓒ이현주 (목사) |
□ 소금에 아니 전 놈이 장에 절까
속담에 나오는 '전'이라는 말과 '절까'라는
말은 모두 '절다'에서 온 말로, '푸성귀나 생선 따위에
염분이 속속들이 배어들어 숨이 숙다'는 뜻이다.
김치를 담글 때 김치를 다듬은 뒤 소금에 절인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과정이다.
'소금에 아니 전 놈이 장에 절까' 할 때의 장이란
간장·된장·고추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간장·된장·고추장을
만들 때도 당연히 소금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 짜기로
하자면 어디 장이 소금을 당하겠는가.
결국 '소금에 아니 전 놈이 장에 절까'라는 말은,
큰일도 이겨낸 사람이 그만한 일에 넘어갈 리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소금을 이겨내면 장은 문제가 없다.
때로 사막을 지나고 불 속을 지나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면 나머지는
괜찮다. 어떤 일이 와도 넉넉히 받을 수 있고 품을
수 있다.
고난을 제3의 성례전이라 하는 것은 깊고도 그윽한
혜안이라 하겠다. ⓒ한희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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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글방 - 꽃차 한잔의 향기와
여유
○지난일기 |
□ 침묵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나오질 않네.
그런 날도 있는거지 뭐.
주절 주절 모두 꺼내 놓다 보면
수다쟁이 되어 실수도 많을텐데...
안하느니만 못할때도 있는거니까.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라서는 아니라네.
고요한 침묵은 더 긴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도 하니까.
가만히 눈 감고, 말 없는 긴 이야기 길을 떠나봐야지.
2003.12.15.
모든 시끄러움이
잦아들고
고요함 가운데 청명하게 들리는
주의 세미한 음성...
그 음성을 듣고 싶다. 2010.2.10. ⓒ이인숙 그냥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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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책은 물과
공기 같아서 맑고 깨끗한 책을 골라 읽어야
영혼도 맑아집니다. ○지난일기 |
정원의<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원리>를 읽다 33 |
□ 새로운 법칙 |
죄와 싸워서 이기기 어려운 것은 죄와 사망이
하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
안에서 역사 하는 한 법칙입니다. 누구나 육으로
살면 죄와 사망의 법칙 아래 거하게 됩니다. 법칙과는
싸우기 어렵습니다. 법칙은 인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와 사망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지 육의 힘으로 억지로 싸워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로마서 8:2절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참 놀랍고 아름다운 것은 '생명과
성령의 역사'가 법이라는 것입니다. 법은 법으로써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저절로 열매를 맺고 저절로 죄를 이기게 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운받을 수 있을까요? 그 조건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정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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