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70호 |
2010년4월22일에 띄우는
삼천칠백일흔번째 쪽지! ◁이전 l 다음▷l지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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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추천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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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과 고난
고생은 궁핍이나 가난 때문에 당하는 힘든
일이고
고난은 주를 위해 일부러 택한 길에서 당하는 힘든
일입니다.
고생은 타락한 인간들이 당연히 감내할 수밖에 없는
죄값이고
고난은 주를 위해 자처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일입니다.
고생은 사람들이 사서하는 것이고
고난은 주를 위한 연단이며 훈련과정입니다.
그런데, 주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자신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아주 쌩고생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그
고생을 고난이라고 착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개고생을 주를 위한 연단이었느니 훈련이었느니
하면서 신앙 경력(?)으로 간증까지 하고 다니니 기가
찰 노릇이여!
아무리 예수 믿기 전에 엄청난 고생을 했어도 그것은
소용없는 쌩고생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과거 인생 고생을 울고불고하며 간증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고 주님과 사명을 위한 고난을 따로
또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를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했지
고생하라고는 안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개고생을
시키는 책이 아닙니다.
고생과 고난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개고생 안하고 살 수 있습니다. ⓒ최용우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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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1026 <존 오웬의 신학/부흥과개혁사>중에서○지난글 |
○책구입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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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과 시련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
'시련'이라는 것은 시험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이며 이것이 죄와 결부되어 개인의
삶에 적용될 때 시험이라고 본다.
이러한 시험을 받는 신자는 단지 환경에 대해 객관적인
피해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내고 작용함으로써
시련을 이기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져 악에 빠지기도
하는 존재이다. 물론 어느 특별한 순간에 신자가
사탄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시험이든지 그것이 참으로 시험이 되기
위해서는 신자가 그 시험에 대해 욕망과 불순종으로
반응하게 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
사냥꾼이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잡으려고
숨을 죽이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위를 바라보며 온통 신경을 쓰느라 자신의 아래는
발로 독사를 밟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사냥꾼은 독사에게 발뒤쿰치를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꼬랑지] 남을 잡으려 하다가는 내가 먼저
잡히지. ⓒ최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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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글방 - 꽃차 한잔의 향기와
여유
○지난일기 |
□ 건강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말'을 줄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요.
말 많이 하는 사람 치고 실속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이
생겼지요.
아, '빈깡통이 더 요란하다'는 속담도 있군요.
말이 많아지는 이유는 말하는 그것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요.
잘 아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고 쓰는 글은 길어질
수밖에 없지요.
잘 알고 쓰면 짧고 간결합니다.
무슨 대작을 써서 인류사에 길이 남기겠다는 어마어마한
생각 같은 것은 내려놓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시한
글이 될지라도... 내 삶의 작은 경험들, 조금 유심히
바라본 사물들의 모양, 그리고 내 마음에 떠오르는
작은 생각의 조각들을 있는 그대로 짧게 써보려고
합니다. ⓒ최용우 201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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