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빛여우와 고승
티벳 어느 유명한 고찰에서 고승이라고 추앙
받는 스님 한 분이 몸에는 법복을 두르고, 등에는
바랑을 메고, 한 손으로는 굵은 염주를 굴리고, 다른
한 손에는 고승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짚고 염불을
외우면서 온갖 폼을 다 잡으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숲 속에서 토끼와 은빛여우와 노루가 어울려
놀고 있다가 스님을 발견하고 장난끼가 발동하였습니다.
은빛여우는 모퉁이를 막 돌아가는 즈음에 바위에
벌렁 드러누워 죽은 척 하고 있었습니다.
티벳에서는 여우털이 매우 비싼 값에 판매되는데,
특히 은빛여우털은 너무 희귀해서 값을 매길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은빛여우가 지금 눈 앞에
죽어 있다니, 눈이 또오--------오옹 ~ 그래진 스님은
잠깐 좌우를 두리번 거리더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서 여우를 잡으려고 확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척 하고 있던 여우는 잽싸게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면서 몸시 힘든 척 비틀거렸습니다. 거의 다
잡았던 '보물(?)'을 놓친 스님은 힘이 빠진 여우를
잘 하면 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거추장스러운
바랑, 염주, 목탁, 법복에 신발까지 벗어놓고 알몸으로
여우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나뭇가지에 굵히고, 발에는 가시가 박히고, 머리는
바위에 부딛쳐 깨지고 아이고매 불쌍해라! 결국
여우를 포기하고 옷을 벗어둔 곳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토끼와 노루와 은빛여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님의 물건들을 몽땅 가지고 가 바랑 안에 든 과자며
떡, 마른 고기로 신나게 잔치를 벌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스님은 결국 개----망신을 당했다는 티벳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동화입니다. ⓒ최용우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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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벼락에는 바가지라도 뒤집어 쓴다’는 말이
있다. 벼락에 바가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무서움을
그렇게라도 가리려고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벼락이 칠 때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라 한다.
두려움이다. 혹시 내 죄를 알고 하늘이 벌을 내리시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누구에겐들 없을까.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는
말도 있다.
죄를 짓지 않은 앰한 사람이 벼락을 맞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모진 놈 옆에 있으면 벼락을 맞는 수가 있다.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복과 화가, 행과 불행이
갈리는 것이지만, 때로는 내가 누구 곁에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갈리기도 한다.
아브라함을 복의 뿌리와 샘으로 부르신 것도, 새
삶을 결단한 삭개오를 두고 오늘 구원이 ‘너’에게
이르렀다 하지 않으시고, 이 ‘집’에 이르렀다
하신 말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진 놈 피하기
위해 눈을 부라리는 대신 내가 먼저 덕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한희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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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글방 - 꽃차
한잔의 향기와 여유 ○지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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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누구편인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사실은 한국 기독교가 모두 모였다기
보다는 보수기독교단체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회장 선거를 잘 못하여 지금 이짝
저짝 두 편으로 나뉘어 소송을 걸고, 대통령을 무릎
꿇려서 온 국민의 공분을 사게 하고,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보니 "예수님은
정의 편입니다. 정의는 꼭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서로 양 쪽에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네요.
거참, 서로 자신들이 '정의'라고 하니 예수님은 어느
쪽 편을 들어주실 것인가? 머리터럭 빠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정의'편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불의한 사람, 죄인)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정의의
사람, 의인)이 붙잡아 끌고 옵니다. 죄를 지었으니
돌로 쳐 죽여서 율법(정의)를 지켜야겠다는 것이지요.(요8:3-11)
만약, 예수님이 '정의'편에 서면 여인은 돌에 맞아
죽게되고, '불의'편에 서면 그것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불의'를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예수님 머리터럭 빠지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예수님은 정의 편도, 불의 편도 아닌 '진리'편을
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 편에 서셨기 때문에
'죄인'도 살고 '의인'도 살 수 있었습니다. ⓒ최용우
2011.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