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05호 |
2011년6월24일에 띄우는 사천백다섯번째
쪽지! ◁이전 l 다음▷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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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천국에 입장한 사람
인도의 고전인 '우파니샤드'에 보면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걸음을 멈추고 산의 거대한 고요함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어 서서 아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입장한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 섭리는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피조물 가운데에서
존재의 경이로움과 사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입장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만물과 자연을 바라보세요.
그냥 순수하게 바라보세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보세요. 이 세상의 만들어진 인공과 꾸밈과
조미료가 주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하고
담백하고 깨끗한 천국의 맛과 멋과 감동이 거기에
있습니다. 오오 주님! 우리의 눈은 너무 오염되어
강을 바라보아도 돈이 보이고, 산을 바라보아도
돈이 보이고, 나무와 꽃을 보아도 돈이 눈앞에 오락가락
합니다. 오오 주님! 돈이 눈을 가려 천국이 보이질
않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우짜면 좋노? 어쩌야쓰까요잉?
어쩌켜어? ⓒ최용우 more.. 이 글에 공감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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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1171
<교리묵상1-
마음지킴/말씀사>중에서○지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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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함 |
거듭난 사람의 마음에도 완고함은 남아 있습니다.
- 그래서 지속적으로 마음을 지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내 굳어져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딱딱한
마음과 방불한 상태로까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신자라도, 마음이 부드럽지 않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살코기는 칼로
잘려도, 딱딱한 돌덩이는 칼로 잘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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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꼬부랑 노인이
정원에 나무를 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노인장께서는 그
나무가 자라 그늘을 만들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사실 수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 나는
그 전에 죽겠지. 그런데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
과수원에는 많은 열매들이 열려 있었어.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의 할아버지가 과일나무를
심었기 때문이지. 나도 내 후손을 위해서 지금 나무를
심는다네"
[꼬랑지] 내 손자를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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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글방 - 꽃차
한잔의 향기와 여유 ○지난일기 |

□ 최고의 사랑
천둥번개가 꽈르르릉 과르르릉 치면 우리집
접시(스카이 라이프)는 잠시 기절을 합니다. '최고의
사랑'이라는 로멘틱 코미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에 파란 상자가 뜨면서
'전파가 약해 수신할 수 없어 어쩌고 저쩌고...' 전파가
저 하늘 어디에선가 날아오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잠시 길을 잃나 봅니다. 뭐얏! 한 참 재미있는
장면에서!!! 그래서 얼른 핸드폰 DMB를 켜서 계속
'최고의 사랑' 마지막회를 봤습니다. 손바닥만한
화면을 세 명이서 들여다보려니 몸이 딱딱붙어 쫌
불편했지만, 뭐 그래도 가족의 몸이 서로 붙으니
체온도 느껴지고... 갑자기 오늘 밤 '최고의 사랑'으로
충전하고 싶어지니 좋네요^^ 드라마 '최고의 사랑'
이라는 제목이 너무 근사하고 내용도 제목과 걸맞게
'최고의 사랑'으로 끝나 만족스러웠습니다. 혹시나
작가가 마지막에 주인공들을 이상하게 만들어 '막장
드라마'로 변질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다
끝나고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드라마 진짜
잘 만들었다. 드라마가 저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기분도 좋고 마음도 편해요." "나도 동
~ 감 ~ " ⓒ최용우 20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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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책은
물과 공기 같아서 맑고 깨끗한 책을 골라
읽어야 영혼도 맑아집니다. ○지난일기 |
정원의<낮아짐의
은혜>를 읽다 117 |
□ 억울함의 경험 |
희생의 분량만큼 열매가 있다. -불신자를
전도하거나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이들은 많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보의 원리이며
희생의 원리입니다. 공짜로 아무의 희생도 고난도
없이 쉽게 한 영혼이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피와 눈물과 억울함과 재앙의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며 영혼이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싫으면 상대방의
구원과 변화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역을
하면서 희생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린것입니다. 잘 가르치고 지혜롭게 말하며
이치에 합당하게 전하면 상대방이 잘 듣고 변화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사역자가
피를 흘리는 만큼만 피사역자는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고난이나 억울함을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이며 사역의 길입니다. 불신자와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희생을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정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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