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70호 |
2012년9월29일에 띄우는사천사백일흔번째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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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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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
"물러가라. 두 번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너는 죽을 것이다." "나도 원하는 바이오. 당신 뜻대로 내가 두
번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라."(10:28-29) 바로왕은 자신에게 닥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직감이라도 한 듯 모세에게 두
번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이거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닌가? 이 땅에 살면서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왕처럼 마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정말 교만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피곤한 스타일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남녀노소 다 싫어합니다. 교만의 뿌리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 있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왕은 아홉 번이나 재앙을 당하면서까지도 그 교만함을 꺾지 않았으니 그를 상대하는
모세는 정말 이런 교만하고 뻔뻔한 인간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미친개와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의 몽둥이가
약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으면 망합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16: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역사상 교만한 왕이나 나라나
사회나 심지어 교만한 목회자가 있는 교회조차도 예외 없이 망했습니다. 교만할수록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겸손할수록 하나님의 얼굴이
점점 커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크기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최용우 more... 이 글에 공감하시면 손가락 표시를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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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주1732 <이오 비망록(二吾 備忘錄)/풍경소리>중에서○지난글 |
□ 네
몫이다
주님은 사람을
더하기 아닌 곱하기로 만나서, 모두를 당신 같은 영(靈)으로 만들고 싶은 영(零)이시다. 내가 그 주님을 곱하기로 만나고자
했듯이, 오늘은 너를 곱하기로 만나고 싶구나. 하지만, 우리가 더하기로 만날 것인지 곱하기로 만날 것인지, 그 결정은 내
몫이 아니다, 네 몫이다.ⓒ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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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내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였을 경우 이것은 물론 남편에 대한 죄이며, 남편이 아내나 외간 남자에 대하여 어떤 심판을 해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그들을 처벌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유태인에게 있어서는 '간통'에 대해 남편은 용서할 권리도 처벌할 권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통은 신에 대한 모독이며 인간에 대한 죄가 아니고 신에 대한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꼬랑지] 그래서 탈무드에는 성적인 유머나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신을 두려워하는 민족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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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 - 어슬렁 어슬렁 동네 한
바퀴 ○지난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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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산행
아내가 추석을 맞이하여 세차를 깨끗이 해 놓으라며 차를 놓고 출근하였습니다. 세차를 다 하고 이제 뭐할까 고민 하다가 물병 두 개 챙겨들고
차를 운전하여 계룡산휴게소로 갔습니다. 휴게소 앞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버스를 타고 현충원역으로 와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까지 와서 택시를
타고(요금2900원) 구암사 마당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구암사를 들머리로 해서 구암사-우산봉-신선봉-갑하산-계룡산휴게소까지 7키로미터를 그냥
달렸습니다. 산을 타면 온 몸이 뻐근하고 땀이 쫙쫙 나고 다리가 후들후들 해야 몸이 시원하게 풀리는데 지난 7월 아내와 함께 이 길을
쉬엄쉬엄 걸었을 때는 그냥 땀만 났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쉬움이 있어서 오늘 다시 한번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걸을 때 4시간
20분이 걸렸는데 오늘은 1시간 59분이 걸렸습니다. ⓒ최용우 2012.9.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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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계명과 덕행
계명을 실천하는 것과 덕행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그 둘은 각기 서로를 촉진합니다.
- 계명이 덕행 자체인 경우가 많고 덕행은 대부분 계명 안에 있기 때문에 그 둘은 어쩌면 이름이 다른 한 가지 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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