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49호 |
2013년1월9일에 띄우는사천오백마흔아홉번째쪽지! ◁이전l 다음▷
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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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지나가십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십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날 때에도, 열두해 혈루병 여인 앞에서도, 눈먼 소경 앞에서도, 푹풍우치는 호수에서 제자들이 다
죽겠다고 고함치는 옆으로 예수님은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불러 주기를 바라며 멈짓거리는
발걸음입니다. 누군가 보아주기를 바라는 발걸음입니다. 누군가 붙잡아주기를 원하는 그런 능청스런 발걸음입니다. "예수님!" 누군가가 예수님을
부르면... 들은 척도 안 하시고 그냥 지나가십니다. "예수님! 예수님!" 그래도 고개조차 돌아보지 않으십니다. "아이고 예수님 제가
죽겠나이다! 제발 저 좀 봐주세요" 그제서야 예수님은 발걸음을 돌리십니다. 누가 예수님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합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해보지 않고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예수님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예수님은 참으로 도도하고 고고하신 분이셔서 나의 자존심과 에고(ego)가 무너지기 전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어디를
봐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만나주신 경우가 제자들을 부를 때 외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거리에서 지나가셨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내 눈 앞을
지나가십니다. 나를 좀 발견해라. 나를 좀 찾아라. 나를 좀 불러 보아라. 하시면서 지나가십니다. 봄에도 지나가고 여름에도 지나가고 가을,
겨울에도 지나가십니다. 오늘도 지나가십니다. 고개를 들고 저기 저쪽을 좀 보세요. 예수님이 저기 지나가고 계시잖아요. ⓒ최용우 more.. 이 글에 공감하시면 손가락 표시를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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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주1811 <이오 비망록(二吾 備忘錄)/풍경소리>중에서○지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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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건
춤추는 건 코브라
머리가 아니다. 코브라다. 아니, 춤추는 건 코브라 머리도 코브라도 아니다. 춤이 코브라 모양으로 저를 추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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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되게 하소서
예수여 부를수록 새로운 당신의 그 이름만이 언제나 우리의 별이 되게 하소서 이제 당신이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오셨으니 당신이 오신 날은 우리의 생일이며 새해 첫날의 설레임인 것을 오늘은 더욱 마음으로 압니다
당신께 드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정성껏 준비한 동방의 세 현자들처럼 우리도 당신께 각자가 준비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예물을 드리오니
비록 무게도 향기도 부족하여 가난한 예물이 될지라도 우리를 향한 당신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 어여삐 받아 주실 것을
우리는 마음으로 믿습니다.
예수여 받을수록 놀라운 당신의 그 사랑만이 언제나 우리의 별이 되게 하소서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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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 <사계절의기도/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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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 - 어슬렁 어슬렁 동네 한
바퀴 ○지난일기 |
□ 안경
내 눈을 내가 믿지 못할 때 내 눈 앞에 출동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고 잡히지 않는 것을 잡게 해주고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해주지만 어느 새 또 외면하는 안경
ⓒ최용우 2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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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책은
물과 공기 같아서 맑고 깨끗한 책을 골라
읽어야 마음과 영혼도 맑아집니다. ○지난일기 |
정원의<방언기도의
은혜와 능력1>을 읽다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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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악함 |
하나님은
인격이시며 또한 동시에 영이시며 영의 특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의 영은 입을
통해서, 소리를 통해서 흘러나오는데 입을 꼭 다문 상태에서 '꼭 말로
해야만 하나. 하나님이 귀가 없으실까... 내 마음을 아시겠지.. 다 아시니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의 흐름과 소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의 흐름을 무시하면서 그 영의 충만함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많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부르짖고 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것은 교양이
없어 보였고 천박해 보였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이게 바로
완악함이었구나.. 내 기질, 내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나 중심적인 사고가
곧 완악함이구나. 나의 체질은 고상한 것이 아니고 완악한 것이었구나..'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오직 내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정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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