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소리
오늘은 경칩입니다. 아침에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아직은 '화창한 봄날'이라고 말을 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날씨이기는 합니다.
봄눈, 봄바람, 봄비가 조용히 조용히 내립니다. 눈,
바람, 비라는 말 앞에 '봄'자가 붙으니 이상하게
눈, 바람, 비가 포근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봄바람에 죽은 노인'이라는 말이 있지요. 봄인 줄
알고 겨울옷을 훌떡 벗어서 버렸다가 그만 얼어죽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노인 이야기. 뭐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자꾸 봄봄 하다보면 봄은 어느새
저 멀리 떠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봄비가 한번씩 내리면 산과 들판의 색깔이 변합니다.
다시 한번 봄비가 내리면 산과 들판에 봄빛이 납니다.
또 한번 봄비가 내리면 이제 산과 들판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가을비는 추적 추적 구질구질
봄비는 조용 조용 몽글 몽글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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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1351 <오늘하루/삼인>중에서○지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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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신 하느님 |
아무도 육안으로는 빛을 보지 못합니다.
빛은 너무 작고 너무 빨라서 사람 눈에 포착되지를
않습니다. 투명체가 아니라서 빛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우리로 말미암아 생긴 어둠 때문에 빛이 있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지만, 그 실체가 도무지 경험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들 하나님을 가리켜 빛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요. 내가 지금 무엇을 본다는 것은 내가 지금
빛 속에 있다는 얘깁니다. 내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 '나'와 '어디'와 '무엇'이 하나인
빛 속에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빛에서 나와 빛 가운데 있다가 빛으로
돌아가는 빛의 가면들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든지, 그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빛의 존재를 먼저 의식하고
몸과 마음과 듯을 그리로 모으면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이 저의 일과이기를 오늘도 빌어봅니다.
ⓒ이현주 (목사) |
□ 꼭두새벽 풀 한 짐이 가을 나락 한
섬이다
'거름보다 호미질'이라는 말이 있어 호미로
풀도 뽑아주고 땅을 긁어서 뿌리의 발육이 돕는
일의 중요성을 일러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곡식을
키우는데 있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거름이다.
거름은 농작물에게 있어 보약과 같다. 겨울 새벽에
일어나 개똥을 주웠던 것은 거름을 하기 위함이었다.
밥 한 그릇은 공짜로 남을 주어도, 거름 한 소쿠리는
남을 주지 않았다. 당장 비교해서 생각하면 밥 한
그릇이 더 귀해 보일지 몰라도, 거름 한 소쿠리로
더 거둘 수 있는 곡식의 양을 생각하면 오히려 거름을
더 귀하게 여길 만 했던 것이다. '거름더미는 쌀더미'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꼭두새벽 풀 한 짐이 가을 나락 한 섬이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꼭두새벽 일어나 풀 한 짐 베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만, 그렇게 벤 풀로 퇴비를
만들면 가을이 되어 벼 한 섬을 더 수확하게 된다.
꼭두새벽 풀 한 짐 베는 수고 없이 가을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결국은 헛된 욕심일 뿐이다.
ⓒ한희철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