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39호 |
2015년6월10일에 띄우는 오천이백서른아홉번째 쪽지! ◁이전l 다음▷
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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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삶
기독교적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부자들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자꾸 사람들을 나누어서 ‘개인적’이고 ‘파편적’이 되게 합니다. 그래야 관리하기가 쉽거든요. 최소한의 단위가 ‘가족’에 머무르게 합니다. 그냥 가족끼리만 잘 먹고 잘 살아라 그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아주 극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자꾸 사람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십ㄴ니다. 최소한의 단위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모여 ‘교단’이 되고 교단이 모여 전 세계에 보편적교회(Catholicism)공동체를 만드십니다. 카톨릭(천주교)이라는 이름이 ‘보편적 교회’ 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사도신경 고백을 하면서 ‘공교회를 믿사오며’ 하고 보편적교회임을 고백합니다. ‘공교회’의 뜻이 모든 교회는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모든 신도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누구하나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신도들끼리는 뜨겁게 사랑하였다....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으며 사도들은 그것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현대어성경 사도행전4:32-34) 부자들의 시스템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시스템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은 ‘작은 공동체’입니다. 몇 가정이 정말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모여 재물, 지혜, 시간, 사람, 노동... 을 서로 공유하여 나누어 쓴다면, 부자들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적이고 모범적으로 증명해준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꿈이 ‘공동체’입니다. ⓒ최용우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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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1733 <서른통/말씀사>중에서 ○지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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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어두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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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너무나 무섭고 괴로워 저녁에 잠들면 아침에 눈뜨기조차 싫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인생의 어두운 밤보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더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어두운 밤을 지나며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습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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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내가 너희 열 두명을 직접 뽑았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이며 멸망의 아들이다. 그가 나를 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큰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6:70-71)
[꼬랑지] 오늘날도 예수님 이용해 돈 좀 벌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룟 유다과’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모르시는 것 같아도 다 알고 계십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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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것들 ○지난일기 |
□두번째 대둔산 마천대에 서다
제259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산행은 대둔산 수락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수락계곡 주차장에서 월성봉-새리봉-서각봉-대둔산(마천대)-칠성봉-삼군봉-낙조대-독수리봉-수락주차장 도착 12.1km를 6시간 동안 걸었다. 대둔산 하면 보통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구름다리 건너 가파른 철계단을 기어올라 1시간만에 마천대에 도착한다. 오늘도 그렇게 올라와서 무슨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 마냥 폼을 잡고 ‘야-호’를 외치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에구, 그건 등산이 아녀요. ‘야호’ 도 아까워... 대둔산은 한국인들이 많이 올라가는 산 6위인 산이다. 아마도 케이블카 때문인 것 같다. 겨우 한 시간 산에 기어오르면 정상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바위능선의 기암괴석과 오래된 소나무와 수목이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나 등산하는 맛이 느껴지는 산이다. 월성봉 초입에 이정표가 없어 살짝 길을 잘못 든 것 외에는 무난한 산행이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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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바라는 바
지성이 하나님께 기원하지 않는 기도는 완전한 기도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분심(分心)없이 크게 외칠 때에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ㄴ아침저녁으로 관상기도를 하면서 바라마지 않는 소원입니다. 나의 영혼이 분심 너머 지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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